마우리아 제국이란?
마우리아 제국(Maurya Empire)은 기원전 322년경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건설한 고대 인도 최초의 통일 제국입니다. 수도 파탈리푸트라(현 파트나)를 중심으로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지배했으며, 제3대 군주 아쇼카 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마우리아 제국의 핵심 내용을 군주별로 정리했습니다.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재위: 기원전 322년~기원전 298년)
찬드라굽타 마우리아는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차나키야(카우틸랴)의 도움을 받아 난다 왕조의 마지막 왕 다난난다를 축출하고 마우리아 제국을 세웠습니다. 헬레니즘 세력의 지배자 셀레우코스는 메가스테네스를 대사로 찬드라굽타의 궁정에 파견했는데, 메가스테네스가 남긴 기록 『인디카』는 마우리아 시대를 이해하는 귀중한 사료입니다.
영국의 문헌학자 윌리엄 존스는 서양 고전에 등장하는 '산드로코토스(Sandrocottus)'를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와 동일 인물로 처음 확정했으며, 이 발견은 고대 인도 연대기를 확립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만년의 찬드라굽타는 자이나교 승려 바드라바후에게 귀의해 왕위에서 물러났고, 오늘날 카르나타카 주의 성지 스라바나벨라고라에서 살레크하나(단식 고행에 의한 죽음)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빈두사라(재위: 기원전 298년~기원전 272년)
제2대 군주 빈두사라는 '적을 없앤 자'라는 뜻의 별칭 '아미트라가타(Amitraghata)'로도 알려져 있으며, 아지비카 교파를 신봉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시리아 왕 안티오코스에게 무화과와 포도주, 그리고 궁정에 함께해 줄 철학자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아쇼카 대왕(재위: 기원전 268년~기원전 232년)
제3대 군주 아쇼카는 백성의 도덕적 향상을 위해 선포한 '다르마(법)' 통치로 가장 널리 알려진 군주입니다. 그의 통치는 칼링가 전쟁을 전후로 크게 구분됩니다.
칼링가 전쟁과 심경의 변화
아쇼카는 즉위 8년째 되던 해인 기원전 261년 칼링가(오늘날 오디샤 지역)를 공격해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목격한 엄청난 유혈 참상 앞에서 깊은 회한을 느꼈고, 이후 무력에 의한 정복 정책을 버리고 '다르마 비자야(법에 의한 정복)' 노선으로 전환했습니다. 칼링가 전쟁과 그의 심경 변화는 제13암각법칙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교 귀의
아쇼카는 형 수마나의 아들인 조카 니그로다의 영향으로 불교에 마음을 기울였으며, 훗날 승려 우파굽타로부터 정식으로 수계받아 불교도가 되었습니다. 한편 아쇼카의 다르마(종교·법)의 정의는 『라훌로바다숫따(Rahulovadasutta)』에서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칙(法勅)과 문자
아쇼카는 제국 각지에 관명과 국가 명령을 바위와 기둥에 새긴 법칙을 세워 백성에게 알렸습니다. 이 법칙은 브라흐미 문자와 크로슈티 문자로 작성되었고, 북서부 지역에서는 아람 문자와 그리스 문자로도 새겨져 다민족 제국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이 법칙을 최초로 해독한 사람은 1837년의 제임스 프린셉(James Prinsep)으로, 그의 성과는 잊혔던 위대한 군주 아쇼카를 역사 속에서 되살려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행정과 주요 사료
마우리아 제국의 고급 관료는 '티르타(Tirtha)'라 불렸으며, 그 수는 18개로 전해집니다. 차나키야의 저술 『아르타샤스트라(정술론)』와 메가스테네스의 『인디카』는 마우리아 제국의 행정·군사·경제 체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꼽힙니다.
아쇼카 사후 제국은 점차 쇠퇴했으며, 마지막 군주 브리하드라타가 장군 푸샤미트라 숭가에게 살해되면서 기원전 185년경 마우리아 왕조는 막을 내리고 숭가 왕조가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