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굽타 왕조와 푸샤부티 왕조: 인도 고대·중세 왕조의 역사 총정리

이 글에서는 인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굽타 왕조 이후의 푸샤부티 왕조를 비롯해, 인도 아대륙을 지배했던 여러 왕조들의 핵심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굽타 왕조와 푸샤부티 왕조: 인도 고대·중세 왕조의 역사 총정리

푸샤부티 왕조는 타네스와르(Thaneswar)에서 건국되었으며, 왕조의 가장 중요한 통치자는 프라바카르바르다나(Prabhakar Vardhan)였습니다.

굽타 이후의 왕조와 푸샤부티 왕조

하르샤바르다나(Harshavardhana, 606~647년)

하르샤바르다나는 위대한 통치자로, 수도를 타네스와르에서 카나우지(Kannauj)로 옮겼습니다. 그의 궁정 시인 바나바타(Banabhatta)는 왕의 업적을 기린 『하르샤차리타』를 저술했습니다.

하르샤 본인도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나가난다』, 『라트나발리』, 『프리야다르시카』 등의 희곡을 직접 창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르마다 강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남인도 찰루키아 왕조의 풀라케신 2세에게 패배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승려 현장(玄奘)은 하르샤바르다나의 통치 기간에 인도를 방문했으며, 그가 남긴 여행기는 『대당서역기(Si-yu-ki)』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팔라바 왕조

팔라바 왕조는 심하비슈누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수도는 칸치(Kanchi, 칸치푸람)였습니다. 희곡 『마타빌라사 프라하산』은 팔라바의 왕 마헨드라바르만이 지은 작품입니다. 마하발리푸람의 유명한 전차(라타) 사원들은 팔라바의 왕 나라심하바르만 1세 때 건립되었으며, 그는 '바타피콘다(Vatapikonda)'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라슈트라쿠타 왕조

라슈트라쿠타 왕조는 단티두르가(Dantidurga)에 의해 건국되었고, 수도는 마니야케타(Manyakheta)였습니다. 드루바(Dhruva)는 카나우지 지배권을 둘러싼 삼국 분쟁에 참여한 최초의 라슈트라쿠타(남인도) 통치자였습니다.

무슬림의 인도 침입

아모가바르샤는 자이나교 신봉자로, 칸나다어로 문학 작품 『카비라자 마르가』를 저술했습니다. 엘로라의 걸작인 카일라사 사원은 크리슈나 1세가 건설했으며, 아잔타와 엘레판타의 석굴 사원들 역시 라슈트라쿠타 통치자들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촐라 왕조

촐라 왕조는 비자얄라야(Vijayalaya)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수도는 탄조르(Tanjore)였습니다. 촐라의 통치자 라자라자 1세는 스리랑카를 침공하여 해외 영토를 촐라 제국의 새로운 속주로 편입했습니다. 그는 또한 탄조르에 시바 신을 모시는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을 건립하고, 샤일렌드라 왕이 나가파티남에 불교 사원을 세우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라젠드라 1세는 갠지스 유역 원정에서 팔라 왕조의 마히팔라를 격파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고, 이 공적을 기념하여 강가이콘다촐라푸람이라는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지방 자치 제도는 촐라 제국 행정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힙니다.

팔라 왕조

팔라 왕조의 창건자는 고팔(Gopal)로, 그는 오단타푸리(비하르 샤리프)에 불교 비하라를 세웠습니다. 다르마팔라는 유명한 비크라마실라 대학을 건립하게 했습니다. 카나우지를 둘러싼 삼국 분쟁은 구르자라-프라티하라의 최종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카슈미르의 왕조들

카슈미르 카르코타 왕조의 통치자 랄리타디티야 무크타피다는 유명한 태양 신전인 마르탄드 사원을 건설했습니다. 『라자타랑기니』의 저자 칼하나는 카슈미르 로하라 왕조 통치자의 궁정에서 활동한 인물입니다.

칼하나의 『라자타랑기니』는 로하라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 자이 싱(Jai Singh)의 통치 기간에 저술되었습니다.

동강가 왕조

오리사 동강가 왕조의 통치자 나라심하데바 1세는 세계적인 건축 걸작인 코나라크의 태양 신전을 건립했습니다.

찬델라 왕조

찬델라 왕조의 창건자는 난누카(Nannuka)이며, 수도는 카주라호(Khajuraho)였습니다. 정교한 조각으로 유명한 카주라호 사원군은 찬델라 왕조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파라마라 왕조

파라마라 왕조의 수도는 처음에 우자인이었으나, 후에 다르(Dhar)로 옮겨졌습니다. 라자 보자(Bhoja)는 위대한 학자이자 시인으로 '카비라자(Kaviraja)'라는 칭호를 사용했으며, 그의 저작으로는 『삼란가나수트라다하라』, 『사라스와티칸타바라나』, 『비드야비노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보자는 다르에 사라스와티 사원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차우한 왕조

차우한의 왕 아자이라자(Ajayapal)는 아제메르(Ajmer)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프리트비라지 차우한은 '라이 피토라(Rai Pithor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궁정 시인 찬드바르다이는 서사시 『프리트비라지 라소』를 저술했습니다.

프리트비라지 차우한은 1192년 제2차 타라인 전투에서 무함마드 고리에게 패배하며 북인도의 운명이 바뀌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토마라 왕조

아낭팔 토마르(Anangpal Tomar)는 오늘날 인도의 수도가 된 델리 시의 기초를 놓은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