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베프 포스퀴일은 누구일까? 안네 프랑크의 숨은 조력자

베프 포스퀴일(Bep Voskuijl, 1919~1983)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암스테르담에서 안네 프랑크와 그녀의 가족을 나치의 박해로부터 숨겨 준 네덜란드의 용감한 조력자입니다. 낮에는 평범한 회사 비서로 일하면서도 은신자들에게 식량과 소식을 몰래 전하며 목숨을 건 조력 활동을 펼친 인물로, 오늘날 네덜란드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노동자 가정에서

베프 포스퀴일은 1919년 8월 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여덟 남매 중 막내로 자랐습니다. 평범한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는 고등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 덕분에 일찍이 사무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1937년, 열여덟 살 무렵의 베프는 유대계 사업가 오토 프랑크가 운영하던 젤라틴 제조 회사 '오펙타(Opekta)'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오토 프랑크의 비서가 되었고, 프랑크 가족과도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은신처의 가장 어린 조력자

1940년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면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되자, 오토 프랑크는 가족과 함께 숨어들 곳을 준비했습니다. 1942년 7월, 프랑크 가족은 오펙타 사무실 뒤편에 마련된 은신처로 들어갔고, 이후 반 다임 부부와 그들의 아들 페터, 치과의사 프리츠 푸퍼까지 합류해 모두 8명이 되었습니다.

당시 스물세 살이던 베프는 미프 히스(Miep Gies)와 함께 은신처를 지탱하는 가장 어린 조력자였습니다. 그녀는 식량 배급표와 식료품, 의약품, 책과 잡지, 옷 등을 몰래 구해 은신처로 전달했으며, 바깥세상의 소식도 은신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낮에는 평범한 비서인 척해야 했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 하나가 모두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긴장 속에서 매일을 보냈습니다.

흥미롭게도 은신처 입구를 가린 회전식 책장을 직접 만든 사람은 베프의 아버지 요하네스 헨드리크 포스퀴일입니다. 아버지와 딸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위험한 임무에 헌신했습니다.

안네 프랑크 역시 일기에서 베프를 따뜻하게 언급했습니다. 베프가 가져다 준 책과 잡지는 은신 생활의 지루함과 두려움을 견디는 큰 위로가 되었고, 안네는 그녀에게서 연상의 친구 같은 친근함을 느꼈습니다.

발각, 그리고 상실

1944년 8월 4일, 은신처는 누군가의 밀고로 게슈타포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안네 프랑크를 포함한 8명의 은신자가 모두 끌려갔고, 프랑크 가족은 이후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베프는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지만, 친구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은 평생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습격 이후 은신처에 흩어져 있던 안네의 글 일부를 챙겨 책상 서랍에 보관했습니다. 이 기록들은 전쟁이 끝난 후 극적으로 돌아온 오토 프랑크에게 전해졌고, 세계적인 문학 유산이 된 『안네의 일기』가 완전한 모습으로 남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전쟁 이후의 삶

전쟁이 끝난 후 베프는 1946년 코르넬리스 반 베이크(Cornelis van Wijk)와 결혼해 네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영웅 대우를 받기를 원하지 않았던 그녀는 전쟁 당시의 경험에 대해 거의 입을 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그녀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말년에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깊은 우울을 겪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딸 요프 반 베이크(Joop van Wijk)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출간하면서 비로소 베프의 헌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기억 속의 베프 포스퀴일

베프 포스퀴일은 1983년 5월 6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무기를 들지 않았고, 전장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목숨을 걸고 남을 돕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정한 저항가이자 인도주의자입니다.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언제나 베프 같은 조용한 조력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생애는 오늘날에도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