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진남북조 시대에 존재했던 나라 '양(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건국된 지 약 50년 만에 멸망한 단명한 국가였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무려 일곱 명의 황제가 배출된, 이르자면 '어쩔 수 없는 나라'였는데요.
역사 교과서에서 남조(南朝)에 송(宋)·제(齊)·양(梁)·진(陳) 네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만 알고, 각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남조 네 왕조 중 하나인 '양(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양의 황실은 제(齊)와 같은 소씨(蕭氏)
소씨(蕭氏)는 초한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한나라의 승상 소하(蕭何)의 후손을 자칭하는 가문으로, 그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동진을 사실상의 쿠데타로 무너뜨린 송(宋)을 멸망시키고 제(齊)를 세운 것도 바로 이 소씨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문 내부에서 황제 자리를 두고 다투는 일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건국된 지 불과 23년 만에 같은 혈족의 손에 의해 제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나라가 바로 이번 주인공인 양(梁)입니다. 그런데 양 역시 제에 못지않게 '어쩔 수 없는' 국가였습니다.
건국 초기에는 구품관인법 개혁 등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선정을 폈던 듯하지만, 곧바로 무능해져 버립니다. 초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학문을 장려한 문치형 황제였지만, 정작 종실은 어쩔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소씨는 서진의 사마씨(司馬氏)에 버금갈 만큼 자기 일족의 발목을 잡는 데 능한 가문이었고, 중국 역사상 최악급 인물로 꼽히는 후경(侯景)은 바로 그 틈새를 정확히 파고들었습니다.
후경은 본래 양의 적국인 동위(東魏)와 싸워야 할 인물이었지만, 소씨 일족인 소정덕(蕭正德)과 손을 잡고 수도 건강(建康)을 공격했습니다.
양은 농성하며 구원군을 기다리기로 했지만, 계획됐던 지원군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성 안의 식량은 바닥나고 수도는 지옥이 되었죠. 구원에 나서야 할 군대 상당수가 종실 출신이었음에도, 이런 비상사태 속에서도 그들은 관망을 선택했습니다. 역시 어쩔 수 없는 나라입니다!
물론 당시 무제는 이미 80세를 넘긴 고령이라 정상적인 지휘가 어려웠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 번은 구원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금방 파기되었고, 결국 무제는 포위된 성 안에서 포로 신세로 전락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수도를 함락시킨 후경은 괴뢰 정부를 세우고 스스로 '우주대장군(宇宙大將軍)'이라는 터무니없는 칭호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만행이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후경은 진(陳)을 세운 세력과의 싸움에서 금방 패배했고, 그 후로도 종실 간의 황제 자리 다툼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황제다!" "아니야, 내가 황제다!" 하며 종실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후경을 토벌한 영웅에게 양은 멸망당하고 새로운 나라 '진(陳)'이 탄생했습니다.
육조(六朝) 시대, 종실의 내분으로 멸망하다
삼국시대부터 강남에 왕조를 세운 오(吳)부터 시작해 동진, 송, 제, 양, 진까지, 여섯 왕조를 통틀어 '육조(六朝)'라고 부릅니다.
육조 후반기에는 약하고 단명한 나라가 눈에 띄었지만, 한편으로 이 시대에는 서예의 달인 왕희지(王羲之), 시의 대가 도연명(陶淵明), 회화의 대가 고개지(顧愷之), 그리고 이번에 등장한 양 무제의 아들 소통(蕭統)이 편찬한 『문선(文選)』 등 뛰어난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육조 문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문화적으로는 뛰어났지만, 정치적으로는 이번에 살펴본 양처럼 종실 간의 계승 다툼이 극심해지면서 정권이 매우 취약했습니다.
특히 제와 양에서 이러한 취약성이 두드러졌고, 결국 육조 문화의 붕괴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양이 멸망한 지 약 40년 후, 새로운 중국의 강자가 된 수(隋)의 문제(文帝)가 중국 대륙을 재통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