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정책은 언제 사용되었나?
유화정책(어피스먼트)은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도중이 아니라, 주로 전쟁 발발 이전인 1930년대에 사용된 외교 정책이었습니다. 즉, 유화정책은 전쟁을 막기 위한 시도였지 전쟁 중에 채택된 전략은 아니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유화정책의 의미
유화정책이란 침략적인 성향을 보이는 국가에 대해 양보와 타협, 회유를 통해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외교적 노력을 의미합니다. 당시 여러 지식인과 정치가들은 이러한 타협이 또 다른 세계대전의 발발까지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체임벌린과 나치 독일
'유화정책'이라는 용어는 1930년대 후반 나치 독일의 일련의 요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외교 정책과 사실상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38년 뮌헨 협정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히틀러의 주데텐란트 병합 요구를 받아들여 '우리 시대의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명분으로 체결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유화정책은 히틀러의 팽창 야욕을 억누르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요구를 더 부추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1939년 폴란드 침공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