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1963년에 미국과 소련 양국만 서명한 핵실험 금지 조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체결된 것은 1963년 8월 5일 모스크바에서 미국, 소련, 영국 세 나라가 서명한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Partial Test Ban Treaty, PTBT)입니다.
조약의 주요 내용과 중국의 배제
이 조약은 대기권, 우주 공간, 수중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지하 핵실험은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핵개발을 진행하고 있던 중화인민공화국은 협상 과정에도 초대받지 못했고, 조약 서명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공식 반응
중국 정부는 이 조약을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주요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핵독점 음모 규탄: 중국은 이 조약을 미소 등 기존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핵 독점 지위를 유지하고, 다른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을 봉쇄하려는 '핵 강국의 음모'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 불참 선언: 중국은 조약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혔으며, 이는 핵억지력 확보가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는 입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자체 핵개발 가속화: 오히려 조약 체결 이후 중국은 자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더욱 밀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 1964년 첫 핵실험 성공
중국의 이러한 대응은 곧 현실이 되었습니다. 1964년 10월 16일,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로푸노르(Lop Nur) 시험장에서 코드명 '596'이라 불리는 첫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며 세계 다섯 번째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이는 PTBT 체결 불과 1년여 만의 일로, 조약이 핵 확산을 막지 못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참고로 프랑스 역시 소수 핵강국들만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에서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는데, 중국은 이를 자신들의 입장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