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의 포문이 열렸다. 그리고 단 사흘 뒤인 12월 11일, 태평양과 거리가 먼 나치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명실상부한 세계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유럽에서 벌어지던 전쟁에 미국이 직접 개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먼저 선전포고한 쪽은 독일이었다
흔히 혼동하기 쉽지만,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1941년 12월 11일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국회 연설을 통해 미국에 먼저 선전포고를 했고, 같은 날 미국 의회는 이에 대한 응수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선전포고를 승인했다. 당시 이탈리아 역시 독일과 함께 미국에 선전포고한 동맹국이었다.
사건의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2월 7일: 일본, 진주만 기습 공격
• 12월 8일: 미국, 일본에 선전포고
• 12월 11일: 독일·이탈리아, 미국에 선전포고 → 미국, 독일·이탈리아에 선전포고로 맞대응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한 다섯 가지 이유
1. 삼국 동맹 조약과 동맹 연대의 명분
1940년 9월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삼국 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엄밀히 말해 이 조약은 제3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상호 지원한다는 방어적 성격이 강해, 일본이 먼저 공격한 이번 사안에는 엄격한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동맹의 연대를 과시하고 추축국의 결속을 드러내기 위해 선전포고를 선택했다.
2. 이미 사실상 진행 중이던 미독 교전
양국은 선전포고 이전부터 사실상 교전 상태에 있었다. 미국은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을 통해 영국과 소련에 막대한 물자를 지원했고, 대서양에서는 미 해군 함정과 독일 잠수함(U보트) 사이 충돌이 잇따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가을부터 대서양에서 독일 함정에 대해 '발견 즉시 격침' 방침을 내리고 있었다. 히틀러 입장에서 전면전은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3. 미국 전력에 대한 히틀러의 과소평가
히틀러는 미국의 산업 능력과 군사적 잠재력을 크게 잘못 판단했다. 그는 미국이 전시 체제를 갖추고 유럽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기까지 최소 몇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며, 그 전에 소련과 영국을 굴복시켜 승기를 확정지을 수 있으리라 낙관했다. 초기의 연전연승이 만들어낸 과신이 컸다.
4. 일본이 미국을 묶어줄 것이라는 계산
히틀러에게 일본의 대미 개전은 오히려 기회였다. 미군의 상당한 전력이 태평양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독일은 유럽 전역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작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일본이 미 태평양 함대를 견제해 주면 대서양에서 독일의 해상 봉쇄도 한층 수월해질 것이라 기대했다.
5.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전면 개시
선전포고는 독일 해군에게도 명분이 되었다. 그동안 미국의 개입을 자극하지 않으려 절제해 왔던 대서양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이제 정식 전쟁 행위로 전면 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독일은 연합군의 대서양 보급로 차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치명적인 오판이 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결정은 스스로 재앙을 불러온 실책이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과 인적 자원이 연합군에 합류하면서 전세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필두로 서부 전선이 열렸고, 동부에서는 소련군이 반격에 나서면서 독일은 양면전에 몰렸다. 결국 1945년 5월, 독일은 무조건 항복하며 나치 정권은 막을 내렸다.
진주만 이후 독일의 선전포고는 단순한 동맹 의무의 이행이 아니라, 이미 예견된 충돌을 앞당긴 과감하면서도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리고 그 도박의 대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독일의 패망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