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베트남전 미군은 왜 같은 편 장교를 수류탄으로 죽였나? '프래깅'의 충격적 실체

베트남 전쟁(1964~1975)이 진행되는 동안 미군 내부에서는 지금도 회자되는 기이하고 위험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프래깅(Fragging)'입니다. 프래깅은 파편 수류탄(fragmentation grenade)을 사용해 지휘 계통의 상사를 위협하거나 살해하려는 행위를 가리키며, 명칭 또한 파편 수류탄에서 유래했습니다.

총탄 대신 수류탄을 택한 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특히 전투가 한창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발생한 경우, 수류탄 폭발은 아군 오사(誤射)와 구분하기 어려워 가해자를 특정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즉,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완벽한 무기'였던 셈입니다.

베트남전 미군은 왜 같은 편 장교를 수류탄으로 죽였나?  프래깅 의 충격적 실체

전쟁에 대한 환멸, 최전선으로 번진 미국 사회의 균열

전쟁 초기만 해도 미군은 전쟁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단결력과 규율을 잘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기와 규율은 급속히 무너져 내렸고, 이러한 변화는 TV와 언론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접한 미국 본토 여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습니다.

1960년대 말, 군과 사회 전반의 불안정을 보여주는 두 가지 결정적 사건이 터졌습니다. 첫째, 닉슨 행정부가 분쟁의 '품위 있는 해결책'을 모색하며 점진적인 전쟁 철회를 결정했지만, 정작 전선에서는 병력이 계속 투입되고 병사들은 계속 목숨을 잃었습니다. 둘째,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이 촉발한 인종 폭력이었습니다. 미국 사회의 불편함과 갈등이 그대로 최전선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패배할 운명인 전쟁을 위해 왜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명령에는 의문이 제기됐고 불복종이 일상화됐으며, 탈영이 시작됐습니다. 인종적 긴장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사들을 향한 의심과 적개심으로 번졌고, 마침내 프래깅 현상이 시작됐습니다.

프래깅의 표적: 어떤 장교가 겨냥당했나

프래깅의 잠재적 희생자에게는 뚜렷한 유형이 있었습니다. 부하를 무리한 작전으로 위험에 빠뜨리는 무능한 장교, 전공(戰功)과 영광만 좇아 부대를 끌고 다니는 광신적이거나 자살적인 지휘관, 그리고 인종차별적 성향을 드러내던 장교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프래깅이 처음부터 살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초반에는 침대에 수류탄 핀을 놓아두는 식의 경고 형태로 나타났고, 해당 장교가 여전히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비로소 실제 암살로 발전했습니다.

충격적인 통계: 단 2년간 363건의 폭발 사건

추산에 따르면 1970년부터 1971년까지 단 2년 사이 베트남 주둔 미군 장교들을 겨냥한 폭발 장치 사건이 무려 363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가해자 대부분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처벌을 면했지만, 이러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군인은 71건으로 기록됩니다.

프래깅은 낮은 군 사기, 약물 남용, 인종적 긴장, 그리고 인기 없는 전쟁에 맞선 미국 젊은 세대의 반발이라는 시대적 조건이 겹친 가운데 만연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 범죄를 넘어, 전쟁의 정당성을 잃은 군대가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출처: 뉴 아메리카 미디어(New America Media), 역사(History), 세일럼 뉴스(Salem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