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쿠 클럭스 클랜의 협박장에 답한 검찰총장의 한마디: 'Kiss my ass'

1976년, 미국 앨라배마주 검찰총장은 쿠 클럭스 클랜(KKK)으로부터 받은 협박 편지에 공식 문서용지에 단 한마디로 답했다. 바로 "Kiss my ass"(내 엉덩이나 빨아라)였다. 이 짧지만 강렬한 답장은 오늘날까지 시민권 운동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재개된 16번가 침례교회 폭탄 테러 사건

1970년, 겨우 29세의 나이에 앨라배마주 검찰총장에 당선된 빌 백슬리(Bill Baxley)는 부임 직후 곧바로 16번가 침례교회 폭탄 테러 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했다.

1963년 9월 15일, 앨라배마주 버밍햄의 16번가 침례교회에서 발생한 폭발로 인해 11세에서 14세 사이의 흑인 소녀 네 명 — 애디 메 콜린스(Addie Mae Collins), 신시아 웨슬리(Cynthia Wesley), 캐롤 로버트슨(Carole Robertson), 데니즈 맥네어(Denise McNair) — 가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 만행은 다름 아닌 쿠 클럭스 클랜의 소행이었다.

당시 KKK 소속 로버트 챔블리스(Robert Chambliss)가 기소되었지만, 정작 살인 혐의로는 무죄 판결을 받고 다이너마이트 122개를 불법 소지한 죄로 100달러 벌금과 6개월 징역형에 그쳤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시민권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1964년 시민권법 통과에 기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범들은 여전히 자유로운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쿠 클럭스 클랜의 협박장에 답한 검찰총장의 한마디:  Kiss my ass

협박 편지와 역사에 남은 답장

빌 백슬리가 사건 재수사를 추진하자 반발은 즉각적으로 따라왔다.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 인종 통합 반대를 기치로 내건 극우 단체 전미 주권당(National States Rights Party)의 창립자이자 KKK의 '그레이트 드래곤(Great Dragon)'이었던 에드워드 R. 필즈(Edward R. Fields)는 백슬리에게 노골적인 협박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백슬리의 답장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필즈 "박사"님께:

귀하의 1976년 2월 19일자 서신에 대한 저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 Kiss my ass. (내 엉덩이나 빨아라)

감사합니다.

빌 백슬리
앨라배마주 검찰총장

쿠 클럭스 클랜의 협박장에 답한 검찰총장의 한마디:  Kiss my ass

늦었지만 끝내 도착한 정의

1977년 11월, 73세의 챔블리스는 드디어 교회 폭탄 테러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85년 10월 29일 앨라배마주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0년 5월 18일, FBI는 이 범행의 공범으로 KKK 소속 세 명을 추가로 지목했다: 허먼 캐시(Herman Cash), 토머스 블랜턴(Thomas Blanton), 바비 체리(Bobby Cherry). 캐시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지만, 블랜턴과 체리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두 사람 모두 유죄 판결을 선고받으며 37년에 걸친 긴 추격전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