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세기의 유산, '영부인'이라는 특별한 자리
조 바이든이 미국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그의 아내 질 바이든은 수백 년간 '영부인'이라는 복잡하고 때로는 논란이 된 자리를 빛내 온 위대한 여성들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흔히 잊히곤 했던 이 여성들이 이제 워싱턴 국립 초상화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 전시회 <모든 시선은 나에게: 미국의 영부인들>(All Eyes on Me: America's First Ladies)의 주인공으로 나섭니다.
마사 워싱턴에서 엘레노어 루스벨트, 미셸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이번 전시는 독보적인 위치를 활용해 정치·사회 담론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전시된 초상화들은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며 변화해 왔을 뿐만 아니라, 각 주인공이 세상에 전하고자 했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대 영부인 마사 워싱턴은 따라야 할 선례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미국이 아직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 참고하던 유럽 궁정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영부인(First Lady)'이라는 호칭은 19세기 말에야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사 워싱턴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그녀를 '레이디 워싱턴(Lady Washington)'이라 불렀는데, 이는 그만한 지위의 여성을 지칭하기 위해 물려받은 언어였습니다.
반면 미셸 오바마는 남편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고, 자신이 최초의 흑인 영부인이라는 문화적·역사적 의미를 깊이 인식해, 자신의 공식 초상화를 흑인 예술가에게 의뢰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초상화로 만나는 역대 영부인

마사 워싱턴 (1789~1797)

애비게일 애덤스 (1797~1801)

마사 제퍼슨 (1801~1809)

루이자 애덤스 (1825~1829)
런던에서 태어난, 미국 밖 출신 최초의 영부인입니다. 남편의 정적들은 그녀의 영국 출생을 들어 '적'이라는 낙인을 찍으려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저택을 워싱턴 외교관과 정치인들의 사교 활동 중심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녀가 주최한 티 파티가 퀸시 애덤스의 대통령 당선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줄리아 타일러 (1844~1845)

메리 링컨 (1861~1865)

줄리아 그랜트 (1869~1877)

루시 헤이즈 (1877~1881)

프랜시스 클리블랜드 (1886~1889, 1893~1897)
그녀 이전까지 스타급 명성을 누린 영부인은 없었습니다. 프랜시스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고, 여성들은 그녀의 복장을 따라 입었으며, 그녀의 초상은 허락이나 보상 없이 수많은 광고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1892년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재선되어 비연속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두 번째로 영부인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헬렌 태프트 (1909~1913)

그레이스 쿨리지 (1923~1929)

엘레노어 루스벨트 (1933~1945)
“누구도 당신의 동의 없이 당신을 열등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명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유엔 총회의 미국 대표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의 영부인(First Lady of the World)'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매미 아이젠하워 (1953~1961)

재키 케네디 (1961~1963)

팻 닉슨 (1969~1974)

로절린 카터 (1977~1981)

낸시 레이건 (1981~1989)

바버라 부시 (1989~1993)

힐러리 클린턴 (1993~2001)

미셸 오바마 (2009~2017)
그리고 다음 장은 질 바이든에게
미국 밖에서 태어난 두 번째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에 이어, 질 바이든은 자신의 초상화를 통해 어떤 이미지와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자 할까요?

질 바이든
여기서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을 골라 소개했지만, 전시 페이지 <모든 시선은 나에게: 미국의 영부인들>(All Eyes on Me: First Ladies of the United States)에서 모든 초상화와 각 인물의 간략한 프로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