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두 명의 '존슨' 대통령
미국 역사에서 '존슨'이라는 성을 지닌 대통령은 단 두 명뿐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두 사람 모두 재임 중이던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부통령 자리에서 대통령직을 승계받았습니다.
링컨 암살 이후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은 반동적인 정치 노선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케네디 암살 이후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은 여러 방면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린든 존슨

린든 베인스 존슨(Lyndon Baines Johnson)은 1908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농장을 운영했지만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존슨은 텍사스 주립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를 비롯한 명문 사립대학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며, 부유층일수록 자녀를 이런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존슨은 텍사스에서 교사로 일했지만 곧 사임하고 텍사스 주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함께 추진하며 정치적 발판을 다졌습니다.
민주당 내에서 명성을 쌓은 존슨은 차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습니다. 1960년 대선에서 처음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았지만, 결국 존 F. 케네디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존슨은 그의 러닝메이트로서 부통령 자리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비극이 일어나면서, 존슨은 미국의 제36대 대통령으로 승계하게 됩니다.
미국 제36대 대통령으로서

존슨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케네디 행정부의 노선을 계승했습니다.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라는 구호 아래 흑인 차별 문제와 관련해 시민권 운동을 적극 지지했으며, 실제로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을 제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964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빈곤 퇴치와 교육 문제 등 국내 정책에서 실질적인 결과를 거둔 한편, 대외적으로는 베트남 전쟁을 본격화시켰고 전쟁은 점차 수렁에 빠져들었습니다. 끝내 승리하지 못한 전쟁에 국민들은 지쳐갔고, 존슨 본인도 결국 재선 도전을 포기하며 대통령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존슨의 집권기는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전 대통령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마저 암살당하는 격랑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린든 존슨은 임기를 마친 뒤인 197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해에야 베트남 전쟁이 막을 내렸지만, 존슨은 그 소식을 보지 못했습니다. 실제 평화협정이 서명된 것은 존슨이 서거하고 불과 닷새 뒤였습니다.
린든 존슨에 대한 종합 평가
내정 면에서만 놓고 본다면 린든 존슨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대통령 중 한 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노인 의료비를 지원하는 메디케어(Medicare)
- 저소득층의 식비를 지원하는 푸드 스탬프(Food Stamp)
- 저소득층 영·유아의 교육을 지원하는 헤드 스타트(Head Start)
민권법 제정 외에도 빈곤층에 대한 지원 정책을 펼치며 사회복지 정책에 특히 헌신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반면 그는 끝없는 수렁이 된 베트남 전쟁을 시작한 대통령이며, 이 밖에 뚜렷한 외교 성과는 없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다만 베트남 전쟁의 발단 자체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에 열렸고, 케네디 대통령 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존슨 혼자만을 탓하는 것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종합하면, 린든 존슨은 오랫동안 미국 역사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던 인종 문제에 일단락의 계기를 마련하고 빈곤을 포함한 사회 정책에 힘썼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미국 대통령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