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밀하우스 닉슨은 전후 미국 대통령 중 가장 평가가 좋지 않은 인물 중 하나로 꼽힙니다. '닉슨을 높이 평가하는 글은 본 적이 없다', '미국의 수치다'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존재할 정도입니다. 과연 그의 평가는 타당한 것일까요?
대통령이 되기 전의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1908년 캘리포니아의 퀘이커 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미국 대통령 대부분이 동부 해안 출신인 것과 달리 서해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케이스입니다. 퀘이커 가정에서 태어난 또 다른 대통령으로는 허버트 후버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농부, 목수, 운전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잡화점과 주유소를 운영하며 가정을 일으켰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닉슨은 뛰어난 재능을 보여 하버드 대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형제가 아파서 고향을 떠나기 어려웠던 그는 퀘이커 계열 학교인 위티어 칼리지에 진학했고, 졸업 후 듀크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1937년 듀크 로스쿨을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에 입대하여 소령까지 진급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공화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해 연방 하원의원이 되었고, 매카시즘으로 악명 높은 조지프 매카시와 함께 공산주의 색출 작업에 나섰습니다.
이 시기 닉슨은 공산주의와 무관한 정적들까지 무조건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고, 이러한 행보에 대한 비판 속에 민주당으로부터 '트리키 딕(Tricky Dick, 교활한 녀석)'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공화당 내부에서는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았고, 1952년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아이젠하워의 임기가 끝난 뒤 치러진 1960년 대선에서 닉슨은 젊은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에게 미국 대선 역사상 최근접 점수 차로 패배합니다. 이후 케네디가 암살되고 린든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지만, 베트남 전쟁의 늪에 빠진 존슨이 재선 출마를 포기하면서 닉슨은 마침내 1968년 대선에서 승리, 미국 제3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행보
대통령이 된 닉슨은 헨리 키신저를 외교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하고, 극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을 자제하겠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베트남 전쟁 철수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베트남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라오스를 폭격하는 등 말과 행동 사이에 큰 괴리를 보였습니다.
이후 닉슨은 베트남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외교 카드를 꺼냈으며, 1972년에는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회담하여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에 합의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닉슨은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켰고, 미국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승리하지 못한 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미군 철수 이후에도 동남아의 혼란은 계속되어 캄보디아 내전, 라오스 내전 등으로 번져갔습니다. 한편 닉슨은 외교에서 화려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장기화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 악화 속에 달러 가치가 추락하자 금본위제를 중단시키는 강수를 둡니다. 그 결과 달러는 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고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달러 쇼크', 혹은 '닉슨 쇼크'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 중 스스로 물러난 대통령
미국 역사에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대통령은 여럿 있습니다. 병으로 사망했거나 암살당한 경우들이 있었지만, 임기 중 스스로 사임한 대통령은 단 한 명뿐입니다. 바로 리처드 닉슨입니다.
1972년 대선 기간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던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사건, 이른바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면서 닉슨의 참모진과 내각 보좌관들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결국 닉슨은 탄핵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이후 그는 오래 살아남아 1994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닉슨에 대한 종합 평가
닉슨의 평가는 정말 어렵습니다. 업적도 많지만 실책도 많아서, 덧셈법으로 평가하느냐 뺄셈법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오는 대통령입니다.
베트남 전쟁을 확전한 것은 명백한 잘못된 통치였지만, 끝내 철수를 이뤄낸 것은 분명한 공적입니다.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도 여전히 큰 업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환경보호청(EPA)을 설립한 것도 닉슨이며, 실행력 하나만큼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수준이라 평가할 만합니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킨 오점은 미국이 존재하는 한 계속 회자될 것입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닉슨이 역대 대통령 순위의 최상위권에 오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더욱이 '닉슨 쇼크'라고 불리는 달러 쇼크는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미국의 권위를 실추시켰고, 석유 파동과 함께 세계적 불황을 초래했습니다. 나아가 냉전 종식의 방아쇠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는데, 이것이 좋은 일이었느냐 나쁜 일이었느냐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어찌 되었든 적어도 닉슨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