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메릴랜드는 왜 자기 땅을 연방 정부에 내어주었을까? — 워싱턴 D.C. 탄생 뒷이야기

먼저 흔히 있는 오해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메릴랜드(Maryland)는 미국 건국 당시 독립 선언에 서명한 13개 식민지 중 하나로, 1788년 4월 28일 일곱 번째로 헌법을 비준한 '오리지널 주'입니다. 즉, 메릴랜드가 미국의 일부가 아니라거나 땅을 준 적이 없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며, 실제 역사는 정반대입니다. 메릴랜드는 연방 정부에 소중한 땅을 직접 내어준 주이고, 그 땅이 바로 오늘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핵심 부지가 되었습니다.

메릴랜드가 내어준 땅은 어디인가?

1791년, 메릴랜드는 포토맥 강(Potomac River) 북안에 위치한 자신의 영토 가운데 약 177㎢(68제곱마일)에 달하는 땅을 새로운 연방 수도 구역 건설을 위해 연방 정부에 이양했습니다. 버지니아도 알렉산드리아와 아링턴 일대를 함께 기증했지만, 1846년 '반환(retrocession)' 절차를 통해 다시 버지니아로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 현재의 워싱턴 D.C.는 사실상 옛 메릴랜드 영토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땅을 내어준 배경: 1790년의 대타협

이 결정의 핵심에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추진한 연방 채무 승계안이 있었습니다. 독립전쟁으로 각 주가 안고 있던 빚을 연방 정부가 통합적으로 떠안자는 이 계획은 남부 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이때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이 해밀턴과 거래를 성사시키는데, 그 조건이 바로 수도를 남부, 그중에서도 포토맥 강 유역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1790년 타협(Compromise of 1790)이며, 그 결과 1790년 수도법(Residence Act)이 제정되었습니다.

메릴랜드 입장에서의 이유

1. 경제적 실익

당시 조지타운(Georgetown) 등 포토맥 강변 항구 도시들은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국가 수도가 인근에 들어서면 인구와 무역, 자본이 몰려들 것이라는 기대가 컸고, 실제로 이후 워싱턴 D.C.의 성장은 메릴랜드 지역 경제에 큰 활력을 더했습니다.

2. 지리적 중심지라는 자부심

메릴랜드는 건국 초기 13개 주의 지리적 중심부에 가까운 위치였습니다. 남북을 잇는 접점에 있다는 점은 수도 후보지로서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메릴랜드 역시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3. 연방에 대한 충성과 정치적 발언권

강한 연방 정부를 지지했던 메릴랜드에게 수도 유치는 국가에 대한 공헌이자 정치적 위상을 높일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최종 부지를 선정하는 데 깊이 관여했는데, 그의 저택 마운트버논(Mount Vernon)이 포토맥 강 건너 근처에 있었다는 점도 이 지역이 선택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

1846년 버지니아가 자신이 기증했던 땅을 돌려받으면서, 워싱턴 D.C.는 메릴랜드에서 기증받은 땅만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메릴랜드 시민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연방 소유지의 '주민'이 되면서 연방 선거에서 투표권을 잃는 문제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날에도 D.C.의 주 지위 논의(D.C. Statehood)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메릴랜드와의 역사적 연결고리가 자주 언급됩니다.

정리

결론적으로 메릴랜드는 미국의 창립 멤버인 동시에, 국가 수도의 터전을 기꺼이 내어준 주였습니다. 채무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타협, 경제적 기대, 그리고 중심지로서의 자부심이 어우러진 결정이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수도 워싱턴 D.C.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