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게티즈버그 전투(1863년 7월 1일~3일)에는 양측 합계 약 16만 명 이상의 병력이 동원되었습니다.
북군(연방군)의 병력
조지 미드(George G. Meade) 장군이 지휘한 북군 포토맥군은 약 93,000명으로 추산됩니다. 북군은 수도 워싱턴 D.C.를 방어하고 남부 연합의 북진을 저지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전투에 임했습니다.
남군(남부연합군)의 병력
로버트 E. 리(Robert E. Lee) 장군이 이끈 남군 북버지니아군은 약 73,000명 규모였습니다. 리 장군은 북부 영토 내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병력 차이가 의미하는 것
수적으로는 북군이 약 2만 명 더 많았지만, 양측 모두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3일간의 전투에서 사상자는 양측 합계 약 5만 명에 달했으며, 특히 3일째 벌어진 '피켓의 돌격'은 남군에게 치명타가 되었습니다.
결국 게티즈버그 전투는 남북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이 승리를 계기로 북군은 전쟁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