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이전 민족(Pre-Columbian peoples)이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부터 그 대륙에 살았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용어는 히스패닉 아메리카와 앵글로색슨 아메리카의 토착 민족을 지칭할 때 사용되며, 브라질의 경우에는 '프레카브랄리나(pre-cabralina)'라는 별도의 명칭이 쓰입니다.
콜럼버스 이전 문화권에는 잉카, 아즈텍, 마야를 비롯하여 아이마라, 티쿠나, 나스카 등 수많은 민족과 문명이 포함됩니다.
콜럼버스 이전 문명의 공통 특징
가장 활발히 연구된 콜럼버스 이전 문명은 단연 잉카, 아즈텍, 마야입니다.
이 세 민족은 모두 정주 생활을 영위했으며, 신전·궁전·시장·주거지가 갖춰진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서로 매우 다른 문명이지만, 콜럼버스 이전 사회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이들 사회는 극도로 위계적인 구조를 지녔습니다. 최상위에는 황제가 있었고, 그 아래로 사제, 군 지도자, 전사, 그리고 땅을 경작하던 농민들이 자리했습니다.
둘째, 농업이 경제의 근간이었습니다. 옥수수, 감자, 호박 등을 재배했으며,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수공업이 발달했고 금속 공예품도 제작했습니다.
셋째, 의복을 중요하게 여겨 귀족과 평민의 옷차림 사이에 뚜렷한 격차가 존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신교 신앙이 특징적입니다. 삶의 순환과 연결된 여러 신들을 숭배했으며, 행렬과 함께 인간 및 동물 제사가 포함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마야(Maya)
마야인들은 현재의 멕시코 남부,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일대에 정착했습니다. 면화, 옥수수, 담배를 재배했고, 정교한 수 체계를 독자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마야 문명에서 가장 우리를 압도하는 것은 놀라운 건축술입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피라미드에서는 인간과 동물 제의가 치러졌으며, 이 건축물들은 동상과 다양한 상징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뛰어난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마야인들은 일식과 계절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는 달력을 창조했습니다. 이는 농경 활동과 신들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지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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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Aztec)
아즈텍인들은 원래 멕시코 북부에 거주하던 민족입니다.
이후 이 지역의 중심부로 이주하여 여러 민족을 정복했고, 1325년에는 멕시코 고원 중앙의 호수 한가운데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건설했습니다. 이 도시는 대제국의 심장부가 되었으며, 넓고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는 스페인 사람들을 크게 감탄시켰다고 전해집니다.
아즈텍은 진정한 제국의 형태로 조직되어 정복한 민족에게 공물을 징수했습니다. 땅콩, 옥수수, 토마토, 카카오(초콜릿의 원료), 콩, 호박, 고추, 멜론, 아보카도를 재배했고, 주변 민족과 수공예품을 활발히 교역했습니다.
또한 전쟁을 통해 포로로 잡은 용맹한 전사들을 종교 의식에서 신들에게 바치는 풍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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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Inca)
잉카는 현재의 페루, 에콰도르, 그리고 칠레와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안데스 산맥 일대에서 번영했습니다.
잉카는 여러 민족을 통합 통치하며 제국 전역을 아우르는 세금과 노동 부역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세금 징수 내역과 주요 사건은 '키푸(khipu)'라 불리는 시스템으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1부터 9까지 매듭을 지어 수를 표시하는 색색의 끈 묶음이었습니다.
옥수수, 감자, 코카를 재배했으며, 라마와 같은 동물을 가축화하여 양모, 우유, 고기를 얻고 짐 운반에도 활용했습니다.
다른 콜럼버스 이전 민족과 마찬가지로 잉카 역시 다신교를 믿으며 자연을 숭배했습니다. 이를 위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행렬과 음악, 동물 및 인간 제사가 포함된 웅장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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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이전 민족의 경제
콜럼버스 이전 민족 경제의 기반은 농업이었습니다. 잉카는 정교한 관개 시설과 계단식 경작 방식을 발전시켰고, 아즈텍은 호수 한가운데 밭을 조성하는 방법을 익혀 '치남파(chinampas)'라 불리는 독특한 농경지를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잉카와 아즈텍 모두 정복한 민족에게 세금을 부과했으며, 각 가정은 황제를 섬기기 위해 자녀를 보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 대가로 농민들은 가족의 규모에 따라 경작지를 배정받을 권리를 가졌고, 기근이나 역병이 닥치면 황제가 비축한 곡물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들 사회에서는 굶주림과 극심한 빈곤이 드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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