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불렸지만, 전쟁이 끝난 뒤 미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여러 집단의 시민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었습니다. 전시의 반공·반외세 정서와 경제적 불안정은 소수자와 이방인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졌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쟁 중 군복무와 산업 노동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전후 오히려 더 가혹한 차별에 직면했습니다.
- 린칭 방지 입법의 실패: 린칭을 처벌하는 연방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고, 남부에서는 린칭이 계속해서 발생했습니다.
- 인종 분리의 제도화: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을 통해 남부에서 인종 분리가 공식적인 제도로 확립되었습니다.
- 선거권 박탈: 많은 남부 주에서는 인두세, 문맹 테스트, 각종 부정 행위를 통해 흑인들의 투표권을 사실상 빼앗았습니다.
- 일상 속 차별: 고용, 주택,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체계적인 차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민자
전쟁 이후 미국 내 배외주의가 고조되면서 이민 정책도 크게 후퇴했습니다.
- 1921년 비상 할당법(Emergency Quota Act): 전쟁 전 대부분의 이민을 공급하던 동유럽 및 남유럽 출신 이민을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 1924년 국적 기반 할당법(National Origins Act): 1890년 인구 통계를 기준으로 국가별 이민 쿼터를 설정하여, 전쟁 전에는 거의 자유롭던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이민을 사실상 차단했습니다.
- 징병 관련 조항: 징병등록법은 18~45세 모든 남성에게 병역 등록을 의무화했지만, 아직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이민자는 면제했습니다.
정치적 급진주의자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 내 '붉은 공포(Red Scare)'가 만연한 가운데, 정부는 급진주의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습니다.
- 팔머 습격(Palmer Raids): 1919년부터 1920년까지 법무부가 무정부주의자와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상대로 실시한 일련의 단속이었습니다. 수천 명이 증거 없이 체포되었고, 그중 상당수가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언론·표현의 자유
전시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한 입법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습니다.
- 1917년 간첩법(Espionage Act): 징병을 방해하거나 정부에 대한 반란을 선동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했습니다.
- 1918년 선동법(Sedition Act): 정부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하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여 반정부 발언을 광범위하게 금지했습니다.
결론
이처럼 전후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민자, 정치적 급진주의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의 표현의 자유까지 폭넓게 제한되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시민적 자유에 대한 제약은 전쟁 직후에 가장 극심했으며, 이후 몇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완화되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