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타일러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선거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직을 승계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평판은 대체로 좋지 않아, 미국 제10대 대통령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의 명문가 출신
미국은 영국 식민지였던 주들이 연합해 탄생한 나라로,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세워진 버지니아 출신 인물이 특히 많습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도 버지니아 출신입니다.
이는 마치 일본에서 조슈번이 있던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대신이 많았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10대 대통령 존 타일러 역시 버지니아 출신입니다.
타일러는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해리슨과 같은 버지니아주 찰스시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문은 1,200에이커(약 486헥타르) 규모의 플랜테이션에서 흑인 노예 40명을 부려 대규모 농장을 운영할 만큼 매우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존 타일러는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버지니아의 명문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1812년에는 미영전쟁(1812년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이후 상원의원과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내며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랐고, 고향 출신 정치가 윌리엄 해리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윌리엄 해리슨이 취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사망하면서, 존 타일러는 제10대 미국 대통령으로 승계하게 됩니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대통령 사망 시 부통령이 단순히 권한을 대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완전히 승계한다는 점이 헌법으로 명확히 인정된 것은 1967년, 수정 헌법 제25조가 비준되면서였습니다.
거부권 행사와 휘그당 추방
이런 배경 탓인지 존 타일러는 소신대행하는 독립적인 대통령이 되었고, 특히 연방 의회와의 갈등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무려 9차례나 '베토(veto)', 즉 거부권을 행사한 결과, 소속 정당이었던 휘그당의 지도자 헨리 클레이와 격렬하게 충돌했고, 결국 휘그당에서 제명당하고 맙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존 타일러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휘그당 소속이었으며,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총리대신에게는 이런 거부권이 없습니다.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되면 내각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에 부치거나 총사퇴해야 하죠. 다시 말해 미국 대통령은 일본 총리대신보다 훨씬 강력한 권한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부권을 뜻하는 '베토(veto)'는 원래 라틴어로, 로마 공화정 시대 집정관(콘술)이 '베토' 권한을 지녔던 사실에서 유래합니다. 미국의 정치 제도가 로마 공화정을 참고해 설계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

존 타일러가 미국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로 꼽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미국 역사에서 보기 드문 국내 반란, 이른바 '도어 반란(Dorr Rebellion)'입니다.
1841년 로드아일랜드주에서 일어난 이 반란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드아일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로, 당시 백인 남성에게조차 보통선거권을 보장하지 않은 유일한 주였습니다. 이에 주민들은 기존 의회를 무시하고 토머스 도어(Thomas Dorr)라는 인물을 주지사로 선출했고, 도어는 보통선거권 확보를 위해 무장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존 타일러는 연방군을 파견해 이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드문 국내 반란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또한 재임 기간 중에는 멕시코에서 독립한 텍사스 공화국이 미국에 합병되었습니다. 텍사스는 노예주로서 연방에 가입하면서 이후 남북전쟁의 불씨를 지피게 됩니다. 실제로 텍사스가 멕시코 영토였을 때는 노예제가 폐지되어 있었지만, 미국 가입 과정에서 노예주가 되었습니다. 남부 경제가 목화 생산에 의존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흑인 노예 노동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두드러진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862년 1월, 존 타일러는 기관지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제 갑니다. 어쩌면 그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습니다(I am going. Perhaps it is best.)'였습니다.
존 타일러에 대한 평가
이 시기 미국은 경제, 영토, 인구 면에서 급속히 팽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부와 남부의 노예제 갈등이 격화되는 와중에도 존 타일러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별한 실정(失政)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이룬 것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미국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