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1861~1865) 당시에는 징집 대상자가 일정 금액을 지불함으로써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제도가 존재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다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당시에는 법으로 허용된 공식적인 절차였습니다.
징병 회피의 두 가지 방법
북부(연방)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징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대리인 고용입니다. 자신을 대신해 입대해 줄 사람을 찾아 고용하면 본인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300달러의 면제금(commutation fee)을 정부에 직접 납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남부(남부연합)에서도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그 비용은 500달러로 북부보다 더 높았습니다.
300달러의 실제 가치
당시 300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평균 노동자의 약 1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수준이어서, 사실상 부유층만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부자의 전쟁, 가난한 자의 싸움(a rich man's war, but a poor man's fight)"이라는 비판 여론이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사회적 반발과 그 결과
이러한 불평등한 징병 제도는 심각한 사회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특히 1863년 뉴욕에서는 징병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규모 폭동으로 번지기도 했는데, 이른바 '뉴욕 징병 폭동'은 미국 역사상 가장 격렬한 시민 폭동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면제금 제도는 징병의 형평성 문제를 드러내며 논란 속에 폐지되었고, 전쟁의 무거운 부담이 주로 빈곤층과 이민자들에게 전가되었다는 점은 남북전쟁의 어두운 단면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