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재임 31일, 역대 최단 기록! 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해리슨

윌리엄 해리슨(William Henry Harrison)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68세의 고령이었고, 취임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남긴 업적은 사실상 없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삶과 가문의 역사는 미국 정치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버지니아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나다

재임 31일, 역대 최단 기록! 미국 제9대 대통령 윌리엄 해리슨

윌리엄 해리슨의 가문은 버지니아의 저명한 정치인들을 여러 명 배출한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 벤저민 해리슨은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냈고, 형 카터 배싯 해리슨은 버지니아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해리슨 가문은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며 부유하게 살았고, 흑인 노예를 사용하는 전형적인 남부 유력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리슨이 10대 중반 무렵부터 노예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자, 아버지 벤저민은 크게 분노하여 그를 학교에서 내보내고 필라델피아로 보내버렸습니다.

해리슨은 1790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했지만, 1791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학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되었고, 본인도 의학에 흥미를 잃어 결국 18세의 나이로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이후 그는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활약하며 명성을 얻었고, 미영전쟁에서는 영웅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후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해리슨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으나, 처음에는 마틴 밴 뷰런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밴 뷰런 행정부가 점차 지지를 잃으면서, 해리슨은 1840년 대선에서 승리해 미국 제9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현대식 선거운동의 시조

오늘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축제 같은 열광적인 분위기는 윌리엄 해리슨이 그 시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퍼레이드와 파티를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화려한 연설을 펼쳤습니다. 당선 후 취임 연설 역시 무려 2시간을 넘겼는데, 이것은 미국 대통령 역사상 최장 기록으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취임 연설이었습니다. 추위 속에서 장시간 진행된 연설 끝에 그는 폐렴에 걸렸고, 취임 단 31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임기 중 사망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된 해리슨의 31일 재임 기간은 2024년 현재까지도 역대 최단 기록으로, 2위인 제임스 개필드 대통령의 199일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또한 당선 당시 68세였던 해리슨은 당시 최고령 당선자였습니다. 이 기록은 20세기 후반인 1980년, 69세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서야 깨졌으며, 이후 2016년에는 70세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경신했습니다.

놀라운 자손들의 기록

흥미로운 점은 해리슨의 자손이 무척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10명의 자녀와 50명의 손주, 그리고 100명이 넘는 증손주를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인 미국에서는 놀라운 기록으로, 일부다처제였던 중국 왕조의 황제들조차 이만큼 많은 자손을 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특히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은 그의 손자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모두 대통령에 오른 것은 미국 역사상 해리슨 가문이 처음이며, 이후에도 이런 사례는 존 부시-조지 W. 부시 가문 외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에 대한 평가

해리슨의 재임 기간은 너무 짧아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도입한 '관직 은혜제(Spoils System)'를 개혁하려 했다고 전해지며, 잭슨 노선과는 다른 정책 기조를 채택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 시절 노예제에 회의감을 품었던 인물이 어떤 정치를 펼쳤을지 상상해 보면, 31일이라는 짧은 임기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흥미로운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