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7년, 존 캐벗의 역사적인 항해
1497년 존 캐벗(John Cabot)의 탐사 항해는 잉글랜드가 배를 파견하여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를 탐험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으로 본명은 조반니 카보토(Giovanni Caboto)인 그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7세(Henry VII)의 위임장을 받아 항해에 나섰습니다. 당시 그의 목표는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에 따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이미 주장하고 있는 영토를 우회하여, 아시아로 직접 이어지는 새로운 항로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브리스톨에서 출발한 서진 항해
1497년 봄, 캐벗은 잉글랜드 브리스톨 항에서 세 척(일부 기록에 따라서는 다섯 척)으로 구성된 작은 선단을 이끌고 북대서양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항해했습니다. 마침내 같은 해 6월 24일, 그는 뉴펀들랜드(Newfoundland) 연안에 상륙했으며, 그 땅을 헨리 7세 국왕의 이름으로 정식으로 영유했습니다.
캐벗이 믿었던 '아시아 도착'
흥미롭게도 캐벗은 자신이 아시아에 도달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이번 항해를 통해 중국과 동인도제도로 항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발견한 곳은 유럽인에게 미지의 땅이었던 북아메리카 대륙이었으며, 이 발견은 훗날 영국이 북미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북미 경쟁의 시작
캐벗의 항해는 잉글랜드가 북아메리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공식적 계기로 평가됩니다. 이후 프랑스 역시 1534년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의 항해를 바탕으로 북미 땅에 대한 영유권을 내세우면서, 두 강대국 사이의 오랜 식민지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즉, 북미 땅을 가장 먼저 차지한 탐험가는 바로 잉글랜드 국왕의 명을 받고 항해한 존 캐벗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