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1787년 헌법 제정 회의, 연방주의와 반연방주의는 균형 있게 논의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요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 헌법 제정 회의(Constitutional Convention)에서는 연방주의자(Federalist)와 반연방주의자(Anti-Federalist)의 견해가 균형 있게 표현되지 못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대표단의 압도적 다수는 강력한 중앙 정부를 지지하는 연방주의자였고, 주권을 주 정부에 남겨두자는 입장인 반연방주의자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불균형이 생긴 배경

이러한 한쪽으로 치우친 구성은 대표 선출 방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각 주의 대표는 주 의회(state legislature)가 임명했는데, 주 의회들은 대체로 자신들과 같은 연방주의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을 대표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결국 헌법 제정 회의는 사실상 '같은 생각을 가진 연방주의자들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반연방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채, 회의는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중앙 권한을 강화한 연방 헌법 초안을 빠르게 작성해 냈습니다.

이후의 영향

다만 반연방주의자들의 반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헌법 비준(ratification) 과정에서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고, 이러한 논쟁 끝에 권리 장전(Bill of Rights), 즉 수정 헌법 제1조부터 제10조가 추가되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