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담긴 전제는 사실과 다릅니다. 식민지 시대 펜실베니아의 주민들은 지역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연합들과 수시로 갈등을 빚었으며, 그들의 공격을 실제로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다만 '평화로운 펜실베니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인데, 그 배경과 역사적 진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왜 '평화로운 펜실베니아'라는 인식이 생겼을까?
펜실베니아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식민지로 알려진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창시자 윌리엄 펜(William Penn)은 퀘이커 교도로서 평화주의를 신봉했고, 1680년대 레나페(Lenape)족 등 원주민과 공정한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습니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초기 펜실베니아는 뉴잉글랜드나 버지니아 같은 다른 식민지에 비해 대규모 원주민 전쟁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원주민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변경 지역에서 반복된 갈등과 공포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내내 펜실베니아 변경 지역 주민들은 원주민의 습격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건들은 당시 주민들이 느낀 공포를 잘 보여줍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1754~1763)
전쟁 기간 동안 델라웨어(레나페)족과 쇼니족 전사들이 펜실베니아 국경 지역의 농가와 마을을 여러 차례 습격하며 수많은 정착민이 목숨을 잃거나 피난을 떠났습니다. 베들레헴 근교 등 동부 변경 지역에서도 공습에 대한 보도가 신문에 자주 실렸습니다.
포티악 전쟁(1763)
원주민 부족 연합이 영국 식민지 변경 전역에서 동시에 봉기하면서 펜실베니아 서부와 중부 지역 정착촌들이 공격을 받았고, 주민들은 요새화된 마을로 대피해야 했습니다.
팩스턴 보이스 사건(1763)
오히려 정착민 측에서 원주민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사례도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정착민 무리인 팩스턴 보이스(Paxton Boys)가 평화적으로 살던 코네스토가(수스퀘하노크족 후손) 마을을 습격해 주민들을 학살했는데, 이는 원주민 공격에 대한 만연한 두려움과 증오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결론
요컨대 펜실베니아가 초기에는 윌리엄 펜의 외교 노력 덕분에 다른 식민지보다 평화로운 편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주민이 늘고 토지 분쟁이 심화되면서, 펜실베니아 주민들은 원주민 부족 연합의 공격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했고 실제로 그 공포 속에서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펜실베니아 식민지 주민들은 원주민의 공격을 거의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전제는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