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연합(CSA)의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는 타협을 옹호하고 평화 제안을 내놓는 방식으로 북부와의 전쟁을 피하려 애썼습니다.
전쟁 회피를 위해 시도한 네 가지 조치
1. 크리텐든 타협
데이비스는 초기에 켄터키주 출신 상원의원 존 J. 크리텐든이 제안한 '크리텐든 타협'을 지지했습니다. 이 타협안은 뉴멕시코를 노예제를 유지하는 주로, 캘리포니아를 자유주로 연방에 편입시키고, 북위 36도 30분선 이북의 미국 영토에서는 노예제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노예제 분쟁을 해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2. 평화 위원회 구성
1861년 2월, 데이비스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파견한 위원회와 협상하기 위해 평화 위원회를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양측 모두 핵심 쟁점에서 양보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협상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3. 취임 연설
1861년 2월 18일 취임 연설에서 데이비스는 평화와 통합에 대한 소망을 밝혔지만, 동시에 남부 주들이 '북부의 침략'이자 '권리 침해'로 여기는 행위에는 저항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4. 섬터 요새 사건
데이비스는 P.G.T. 보우리가드 장군에게 명령하여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섬터 요새에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이 요새는 아직 연방(북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링컨이 보급선을 파견하자 요새에 대한 포격이 시작되었고, 결국 섬터 요새는 함락되면서 남북전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전쟁 회피 시도의 한계
주목할 점은 데이비스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일정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부 주들의 연방 탈퇴를 옹호하는 데 확고히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결국 남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무력 사용마저 지지했고, 이러한 행보는 남북전쟁의 발발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