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페인에 대한 필리핀과 미국의 협력'이라고 불리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계획된 공동 작전이라기보다 상황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동맹에 가깝습니다. 두 나라가 같은 적을 상대하게 된 배경과, 그 동맹이 어떻게 끝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896년, 스페인 식민 지배에 맞선 필리핀 혁명
필리핀은 16세기 이후 300년 넘게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1896년,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등이 이끄는 필리핀 혁명이 일어나면서 독립을 향한 무장 투쟁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발발
같은 시기 미국은 쿠바 문제를 계기로 1898년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며 미국-스페인 전쟁에 돌입했고, 전쟁 과정에서 필리핀으로 진군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필리핀 혁명 세력과 미국은 자연스럽게 공통의 적인 스페인을 상대로 손을 잡게 됩니다.
독립을 약속받은 동맹
필리핀 혁명가들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마닐라 전투 등에서 함께 스페인군과 싸웠습니다. 당시 미국은 전쟁이 끝나면 필리핀의 독립을 승인하겠다고 약속했고, 아기날도는 이를 믿고 필리핀 독립 선언까지 선포합니다.
약속은 파기되고, 새로운 식민지가 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1898년 체결된 파리 조약에서 스페인은 필리핀을 미국에 양도했고, 미국은 독립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필리핀을 자국의 식민지로 병합하기로 합니다. 결국 배신감을 느낀 필리핀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미국에 맞서 필리핀-미국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정리
즉, 필리핀과 미국의 '협력'은 서로의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공통의 적과 각자의 이해관계가 겹치며 형성된 전략적 동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맹은 미국의 약속 파기로 끝나며, 필리핀에게는 하나의 식민 지배가 다른 식민 지배로 바뀌는 아픈 역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