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경제적·물리적·정서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국가는 단연 프랑스로 꼽힙니다. 전쟁의 주요 전선인 서부전선이 프랑스 영토 안에 그대로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전장이 된 프랑스 땅
벨기에 국경부터 스위스 국경까지 이어진 참호선은 대부분 프랑스 북동부 지역을 관통했습니다. 베르됭, 솜, 마른 등 격전지가 모두 프랑스 영내에 있었고, 수년간의 포격과 참호전으로 도로와 철도, 다리, 공장, 농경지, 마을과 도시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약 10개 주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지역이 '붉은 지대(zone rouge)'로 불릴 만큼 황폐화되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랜 기간 복구 작업이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막대한 인명 피해
프랑스는 약 140만 명에 달하는 병사를 잃었고, 부상자까지 합치면 인명 피해는 수백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프랑스 인구는 약 4천만 명 남짓이었으므로, 젊은 남성 세대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거나 몸이 불구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출생률 급감과 인구 구조의 붕괴는 전후 프랑스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파탄에 이른 경제
전쟁으로 프랑스 경제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생산 시설과 광산이 파괴되었고, 미국과 영국에 진 빚은 산더미처럼 쌓여 국가 재정을 짓눌렀습니다. 독일에 배상금을 요구한 베르사유 조약(1919년)이 체결되었지만, 실제 배상금 회수는 더디고 불안정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경제적 부담은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깊은 정신적 상처
피해는 물질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참호 속에서 목숨을 건 동료들을 잃은 생환자들의 트라우마, 전몰자 가족들의 슬픔, 그리고 또 다른 전쟁에 대한 공포는 프랑스 사회 전반에 깊은 심리적 상흔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집단적 기억은 이후 프랑스가 고립주의적 안보 정책과 마지노선 건설 같은 방어적 태세로 나아가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요컨대 제1차 세계대전은 승전국이라는 이름만 남긴 채, 프랑스에게는 땅과 사람과 경제, 그리고 마음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비극적인 전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