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팔레스타인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불리는 지역은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즉, 당시 이 땅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가진 것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한 속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탄생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승전국들은 1920년 산레모 회의를 통해 이 지역의 통치권을 영국에 넘기기로 했고, 국제연맹은 이를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British Mandate for Palestine)'입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독립을 이루는 대신 새로운 강대국인 영국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이주 확대와 갈등의 심화
1917년 발표된 밸푸어 선언에서 영국은 팔레스타인 내에 '유대 민족의 국가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유럽과 중동 각지에서 유대인 이주가 급격히 늘어났고, 토지 매입과 정치적 권리 문제를 둘러싸고 아랍계 주민들과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영국은 양측 사이에서 줄곧 균형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1948년, 영국 철수와 이스라엘 건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갈등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된 영국은 문제 해결을 국제연합에 넘겼습니다. 1947년 유엔은 이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나누는 분할 결의안(제181호)을 채택했지만, 아랍 측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1948년 5월 14일, 마지막 영국군이 철수하던 날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했고, 이에 반발한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이 곧바로 시작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국가는 왜 수립되지 않았나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근대 이후 이 지역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가 존재한 적이 없으며, 오스만 제국의 지배 → 영국 위임통치 →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외세의 통치를 받아왔습니다. 1948년 전쟁 이후 요르단은 요르단강 서안을,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장악했지만 어느 나라도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과정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뿌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