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이끄는 스페인 원정대가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했을 때, 황제 몬테수마 2세는 그들을 성문 밖에서 맞이했습니다. 바로 이 장면 때문에 "몬테수마가 코르테스를 스스로 수도로 들여보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명확한 역사적 증거는 없습니다.
몬테수마의 선택, '환영'이 아니라 신중한 외교
당시 몬테수마에게 스페인인들은 완전히 미지의 존재였습니다.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얼마나 강력한 무력을 갖추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충돌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일부 기록은 몬테수마가 그들을 케찰코아틀 신의 귀환으로 해석했다는 설을 소개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를 후대의 재구성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결국 몬테수마의 초기 대응은 순진한 개방이 아니라, 정보를 모으고 시간을 벌려는 신중한 외교적 계산에 가까웠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아즈텍의 저항은 끝까지 이어졌다
코르테스가 도시에 머무는 동안 긴장은 빠르게 악화되었습니다. 스페인인들은 몬테수마를 사실상 인질로 삼았고, 1520년에는 충돌이 본격화되면서 아즈텍인들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해 6월 30일, 스페인군은 도시에서 쫓겨나며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이후에도 아즈텍의 저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만 틀라스칼라 등 아즈텍 지배에 반발하던 원주민 세력과의 동맹, 그리고 천연두 창궐이라는 변수가 전세를 크게 뒤집었습니다.
1521년, 테노치티틀란의 함락
재정비를 마친 코르테스는 1521년 5월, 호수를 둘러싸고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상수도 공급을 차단하고 배를 동원해 텍스코코호를 장악한 스페인 연합군에 맞서 아즈텍은 약 석 달간 농성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결국 1521년 8월 13일, 황제 쿠아우테목이 포로로 잡히면서 테노치티틀란은 함락되었고, 아즈텍 제국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결론
"몬테수마가 코르테스를 수도로 들여보냈다"는 단순한 서사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몬테수마의 초기 대응은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신중한 선택이었으며, 그 이후 아즈텍은 오랜 기간 스페인에 맞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테노치티틀란의 함락은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내부 분열과 원주민 동맹, 전염병이 얽힌 복합적인 과정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