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제독은 미국에 오랜 기간 머문 경험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일본 해군 장교 중 가장 미국 사정에 밝은 인물로 꼽혔습니다.
하버드 대학 유학과 워싱턴 근무
야마모토는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미국 하버드 대학에 유학하여 영어와 석유 산업 등을 연구했으며, 이후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워싱턴 D.C. 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해군 무관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는 유창한 영어 구사력을 갖추었고, 미국의 사회와 산업 역량을 직접 목격한 몇 안 되는 일본군 수뇌부였습니다.
미국과의 전쟁에 대한 냉정한 시각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과 풍부한 자원을 몸소 체험한 야마모토는 미일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서 진주만 공격을 계획하고 지휘하는 등 전쟁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의 최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마모토는 일본 제국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 재직하며 일본에 머무르지 않고 최전선 지휘를 계속했습니다. 1943년 4월, 미군이 통신 암호 해독을 통해 파악한 그의 순방 일정을 바탕으로 요격 작전이 실행되었고, 그가 탑승한 항공기는 부겐빌섬 상공에서 미군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그는 전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