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아니아의 역사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하와이 항복 시 선택권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릴리우오칼라니(Liliʻuokalani) 여왕은 하와이 왕국을 항복할 때 사실상 아무런 선택권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던 소수의 미국계 사업가들, 즉 이후 '하와이 공화국'을 세운 세력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했습니다.

1893년, 무력에 의한 왕정 전복

1893년 1월 17일, 미국과 유럽 출신 사업가들로 구성된 '안전위원회(Committee of Safety)'가 쿠데타를 일으켜 하와이 왕정을 전복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주하와이 미국 공사였던 존 L. 스티븐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고, 미군 함선 보스턴호(USS Boston)에서 상륙한 해병대의 무장 개입까지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피해를 막기 위한 조건부 항복

여왕 측에는 저항할 수 있는 병력이 크게 부족했고, 무력 충돌이 벌어질 경우 하와이 국민들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무력 충돌과 인명 손실을 피하기 위해" 권력을 넘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항의하며 내려놓은 조건부 양보였습니다. 여왕은 공식적으로 퇴위를 선언한 것이 아니라, 미국 연방 정부가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아 왕정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 믿으며 시간을 벌려 한 것이었습니다.

복위의 기대는 배신으로 돌아오다

당시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블라운트 보고서를 통해 전복 과정이 불법이었음을 인정하고 여왕의 복위를 검토했지만, 의회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습니다. 결국 1898년 하와이는 미국에 공식 합병되고 말았습니다.

강압에 의한 공식 퇴위

1895년 옛 왕정 복원을 시도한 반란이 실패하자, 여왕은 반역 관련 혐의로 체포되어 이올라니 궁전에 약 8개월간 유폐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사형 집행을 막는다는 조건으로 1895년 1월 24일 공식 퇴위 문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퇴위조차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협박과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결론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항복과 퇴위는 모두 무력과 정치적 압박에 의해 강요된 결과였습니다. 그녀에게 진정한 의미의 선택권은 없었으며, 그녀가 내린 것은 오직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결단이었습니다.

다음 글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