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극(France Antarctique)은 1555년부터 1560년까지 식민지 시대 브라질에 존속했던 프랑스의 식민지로, 현재의 리우데자네이루 시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역사적 배경 요약
15~16세기 유럽의 해상 무역 확장과 함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베리아 반도)이 정복한 땅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여러 협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494년에 체결된 토르데시야스 조약입니다. 스페인 궁정의 파견을 받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미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 유럽 해상 확장의 선구자였던 포르투갈은 8년 뒤에 도착하여 발견한 영토를 정복하고 개척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러한 조약(토르데시야스 조약 및 인터 카테라 교황 칙서)과 영토 분할에서 배제된 것에 불만을 품고, 해외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확장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인들은 원주민들의 적대감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1555년부터 1624년 사이 이 지역을 점령했던 네덜란드인 및 프랑스인들과도 충돌했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포르투갈인들이 인도로 향하던 중 '우연히' 브라질 땅에 도착했다고 봅니다.
흥미로운 점은, 포르투갈인들이 저지른 착오 때문에 이 땅에 살았던 문화권 사람들이 '인디언(Indians)'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일부 역사학자들은 포르투갈인들이 이미 브라질 땅에 발을 딛고 그 땅, 자원,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본국에 전달했다고 믿습니다.
어느 쪽이든,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의 명을 받은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과 13척의 함선, 1천 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된 그의 함대가 브라질 땅 탐사와 정복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곁에는 서기 페루 바즈 드 카미냐가 동행했는데, 그는 그 지역, 문화, 사람들 등에 관한 정보를 왕실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를 위해 카미냐는 1500년 5월 1일 서한을 작성했으며, 이는 브라질에서 쓰인 최초의 문서로서 오늘날 브라질 문학의 기점으로 간주됩니다.
관련 기사:
- 유럽의 해상 확장
- 포르투갈의 항해
- 최초의 대항해
- 페루 바즈 드 카미냐의 서한
프랑스 남극과 적도 프랑스
포르투갈인과 원주민의 만남이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 노동력을 활용하기 전까지 인디언들을 노예로 사용했고, 이는 부족들 사이에 큰 불만을 야기하여 어떤 이들은 도망치거나 죽었고, 또 어떤 이들은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선식민지 시대(1500~1530) 이후 포르투갈인들은 영토의 점유와 착취를 용이하게 하고, 특히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외세 침입을 막기 위해 행정·정치 제도(세습 카피타니아와 총독정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위그노(개신교도)와 가톨릭 교도 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교회의 박해를 받던 많은 개신교도들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니콜라 두랑 빌레가뇽과 가스파르 콜리니 제독의 지휘 아래 프랑스인들은 1555년 현재의 리우데자네이루에 해당하는 브라질 땅에 도착하여, 포르투갈인들이 아직 개척하지 않은 영토, 즉 과나바라 만, 라제, 우루수미림(현재의 플라멩구), 세리지페 섬(현재의 빌레가뇽 섬), 파라나푸안 섬(현재의 일랴두고베르나도르 섬)을 점령했습니다. 여기서 프랑스 남극이 탄생하게 됩니다.
프랑스인들이 브라질 영토에 정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타모이오족과 투피남바족 인디언들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프랑스의 동맹이 되어 같은 목표, 즉 포르투갈인 몰아내기를 공유했습니다.
타모이오 연합은 포르투갈인을 추방하려는 프랑스인과 투피남바족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1560년, 브라질의 제3대 총독 멤 드 사가 이끄는 포르투갈군에 의해 프랑스인들은 축출되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세리지페 섬에 건설된 콜리니 요새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이었으며, 이 요새는 프랑스의 경제적(브라질목 착취)·군사적 거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멤 드 사는 1558년부터 사망한 해인 1572년까지 총독직을 수행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식민지는 북부(수도 살바도르)와 남부(수도 리우데자네이루)의 두 극으로 나뉘며 포르투갈의 식민지 내 존재감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1612년 3월, 다니엘 드 라 투슈의 지휘 아래 브라질 북동부 지역의 상루이스두마라냥을 점령하여 '적도 프랑스'라 불리는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영토는 마라냥 연안부터 현재 토칸친스 주 북부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적도 프랑스는 3년간 그 영토에 머물렀다가, 1615년 포르투갈 행정관 제로니무 드 알부케르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브라질 영토에서 완전히 축출되었습니다.
주제에 대한 지식을 넓히려면 다음 기사도 참고하세요:
- 식민지 시대 브라질
- 식민지 시대 브라질의 원주민 노예제
- 브라질 최초의 수도 – 살바도르
- 세습 카피타니아
- 총독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