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바테 협약이란?
타우바테 협약(Taubaté Agreement)은 1906년 2월, 호드리게스 아우베스(Rodrigues Alves) 정부 시기에 체결된 브라질 커피 산업에 대한 국가 개입 계획입니다. 이 협약의 목표는 커피 가격을 끌어올려 커피 재배 농가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커피 위기의 배경
19세기 후반 커피는 브라질 최고의 수출품이었으며, 세계 전체 생산량의 70%를 브라질의 커피 농장이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국제 시장에서 커피 값이 높게 유지되면서 커피 재배는 상파울루 일대로 급속히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소비 시장—특히 해외 시장—이 생산 증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서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커피 가격은 놀랄 만큼 폭락했습니다. 1893년 포대당 4.09파운드에 판매되던 커피는 1896년 2.91파운드로 떨어졌고, 1899년에는 1.48파운드까지 추락했습니다.
커피 가격 방어 정책의 탄생
커피는 당시 브라질 경제의 근간이었습니다. 대농장주, 지배 엘리트, 여러 주지사들은 커피 재배가 손실을 보지 않도록 다각도로 움직였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는 1906년 2월 26일 마련되었습니다. 이날 상파울루주 타우바테에서 상파울루 주지사 조르제 티비리사(Jorge Tibiriçá), 리우데자네이루 주지사 니루 페샤(Nilo Peçanha),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 프란시스코 살레스(Francisco Sales)가 회동했습니다.
회담의 결과물이 바로 타우바테 협약의 체결이었으며, 이는 이후 '커피 가격 방어 정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세 주 정부는 해외 차관을 통해 과잉 생산된 커피를 매입하고 브라질 항구에 비축함으로써, 국제 시장에서의 가격 폭락을 막기로 약속했습니다.
협약은 차관의 원리금 상환을 수출용 커피 포대 하나하나에 부과되는 새로운 세금으로 충당하도록 규정했습니다. 또한 장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생산 주들이 재배 확장을 억제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연방 정부의 반응과 국제 자본
대통령 호드리게스 아우베스는 지출 억제와 인플레이션 방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연방 정부의 지원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1907년, 미나스제라이스 출신의 아폰수 페나(Afonso Pena)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에야 타우바테 협약은 연방 차원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국 은행들, 특히 로스차일드 가문(House of Rothschild)은 처음에 대출을 거부했지만, 미국과 독일 은행들이 대출에 나서자 태도를 바꿨습니다. 정부는 여러 정부와 국제 자본의 자금 지원을 받아 4년에 걸쳐 시장에서 무려 850만 포대의 커피를 회수했습니다.
성과와 한계
타우바테 협약의 조항들은 시행 초기부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커피 가격 방어는 브라질이 세계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을 때에만 성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국제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면서 다른 나라들의 커피 생산이 오히려 자극받아 경쟁이 심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정책은 여러 정부에 의해 계승되었으나, 1926년부터는 상파울루 주가 단독으로 가격 방어 비용을 떠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