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제국: 헌법 군주제 시대의 흥망성쇠 (1822~1889)

브라질 제국은 1822년부터 1889년까지 입헌군주제로 통치되던 시기를 가리킵니다. 이 시기는 1822년 페드루 1세(D. Pedro I)가 황제로 추대되면서 시작되어, 1889년 공화정 선포와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제1제정기(1822~1831)

브라질 제국은 공식적으로 1822년 10월 12일, 24세 생일을 맞은 도무 페드루 1세가 '브라질 황제'로 즉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페드루 1세는 일부 주에서 임시 통치 위원회가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장악되면서 빚어진 어려운 정세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분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예컨대 바이아(Bahia)에서는 병사들이 리스본 의회(Cortes of Lisbon)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며 반란을 일으켜 페드루 1세를 통치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의 전투 끝에 포르투갈 군인들은 바이아에서 축출되었고, 이 전쟁은 1823년 7월 2일에 종결되었습니다.

1824년 헌법

페드루 1세는 브라질 최초의 헌법 초안 작성을 위해 입헌 회의를 소집했고, 회의는 1823년 5월 3일 첫 회합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페드루 1세가 "자신과 브라질에 합당한 한" 조국과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언하자 급진 자유파 의원들과 황제 사이에 갈등이 커졌고, 결국 페드루 1세는 약 6개월 만에 회의를 해산시켰습니다.

회의 해산 후 페드루 1세는 자신이 신뢰하는 10인 위원회를 구성해 헌법 초안 작성을 맡겼습니다. 입헌 회의에서 준비된 안을 바탕으로 단 16일 만에 완성되었으며, 1824년 3월 25일 페드루 1세는 자신이 부여한 이 대헌장에 대한 준수를 서약했습니다.

1824년 헌법은 입헌군주제를 정치 체제로 확립하고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삼권분립을 규정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황제가 위기 상황에서 세 기관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중재권(조정권)'이라는 네 번째 권력을 신설해 균형 장치로 삼았습니다.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된 것에 대해 여러 주에서 비판이 일었습니다. 페르남부쿠(Pernambuco)에서는 1824년 분리 독립 봉기가 일어나 파라이바, 히우그란지두노르치, 세아라가 동참하며 '에콰도르 연방'이 결성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짧은 기간만 정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진압은 극도로 잔혹했으며,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페르남부쿠 출신 민중의 영웅 프레이 카네카(Frei Caneca, 1779~1825)는 체포된 뒤 총살형에 처해졌습니다.

브라질 제국: 헌법 군주제 시대의 흥망성쇠 (1822~1889)

페드루 1세의 퇴위

페드루 1세는 재위 기간 내내 심각한 재정·정치적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권력 집중, 에콰도르 연방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 지속적인 차관, 브라질 은행 파산(1829)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황제의 위상은 국민들 사이에서 크게 실추되었습니다.

한편 도무 주앙 6세(Dom João VI)가 사망하면서 포르투갈 왕위 계승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페드루 1세가 적통 계승자였지만 이미 브라질 황제였던 탓에 그의 동생 도무 미구엘이 스스로 포르투갈 국왕을 자칭했습니다. 페드루 1세는 아버지가 자신을 계승 서열에서 제외하지 않았다고 항의했습니다.

결국 그는 브라질을 10년간 다스린 뒤 브라질 왕좌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합니다. 후계자는 당시 5세 남짓이었던 페드루지알칸타라(Pedro de Alcântara, 1825~1891)로, 그는 훗날 도무 페드루 2세(D. Pedro II)로서 즉위하게 됩니다.

섭정기(1831~1840)

이 시기에는 임시 삼두 섭정(1831)과 상설 삼두 섭정(1831~1835)이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1824년 헌법은 후계자가 미성년일 경우 세 명으로 구성된 섭정이 제국을 다스리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1834년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제국 전체를 통괄하는 단일 섭정제가 도입되는 등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1834년 추가법(Additional Act)'입니다.

사법부장관이었던 안토니우 페이조 신부(Antônio Feijó, 1784~1843)가 단일 섭정으로 선출되어 1835년 10월 12일 취임했습니다.

페이조의 섭정은 1837년까지 이어졌지만, 각 주에서 봉기가 거듭되자 그는 직책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듬해 페드루지아라우주리마(Pedro de Araújo Lima, 1793~1870)가 새 섭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라우주 리마의 섭정 역시 만연한 불만의 분위기를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섭정기에는 빈곤에 맞선 민중 봉기를 비롯한 여러 정치적 위기가 거듭되었는데,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카바나젱(Cabanagem, 1835~1840): 파라(Pará)
  • 사비나다(Sabinada, 1837~1838): 바이아(Bahia)
  • 발라이아다(Balaiada, 1838~1840): 마라냥(Maranhão)
  • 파라푸스 전쟁(War of the Farrapos, 1835~1845): 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

정치 세력 간 다툼과 각 주의 반발을 수습할 방안으로 페드루 2세의 조기 친정이 제시되었습니다. 황제는 중립적 권력이자 정당한 권위의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조기 성년 선포는 1840년 7월 23일 제국 의회 앞에서 이루어졌으며, 페드루 2세는 14세 7개월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제2제정기(1840~1889)

도무 페드루 2세는 거의 반세기 동안 브라질을 다스렸습니다. 이 시기 초반은 권력을 둘러싼 당파 갈등으로 얼룩졌으며,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에서 자유당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그중 하나가 페르남부쿠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운동인 프라이에이라 혁명(Praieira Revolution)입니다. 1850년에 이르러서야 제국은 국내 정치의 안정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반면 제2제정기 브라질 외교의 초점은 남미 세력 균형에 두어졌습니다. 그 목표는 라플라타, 우루과이, 파라나, 파라과이 강의 자유 항행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라질은 1851년부터 1870년 사이 라플라타 강 유역에서 세 차례의 군사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오리베와 로사스에 맞선 은색 전쟁, 그리고 우루과이의 아기레에 대한 원정이 그것입니다.

1864~1870년에는 파라과이의 침공에 맞서 전쟁을 벌였고, 이 분쟁은 파라과이 독재자 솔라누 로페스(Solano López)의 죽음과 함께 브라질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제정기의 경제

설탕, 면화, 코코아, 담배, 고무는 제국 시절 농업 생산의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브라질 수출의 정점에 선 작물은 단연 커피였습니다. 특히 남동부 지역에서 커피는 제2제정기 귀족층의 성장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전 세계적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이 일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는 19세기 내내 브라질 엘리트층을 분열시키는 쟁점이 되었습니다.

노예 노동은 유럽 이민자들의 자유 노동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1848년 유럽에서 여러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민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브라질 산업은 1844년경 철도 건설이 시작되고, 제당소가 기계화되며, 가스등이 설치되는 등의 변화와 함께 발아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 기업가 가운데서는 바랑지 마우아(Barão de Mauá)가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브라질 공화국으로

1888년 노예제 폐지 이후 제정 정부는 농촌 엘리트층의 지지를 잃었습니다. 파라과이 전쟁 이후 군과의 관계 또한 점차 악화되어 갔습니다.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결집해 1889년 11월 15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황실은 추방당했고, 브라질의 제정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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