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세마리아(Sesmaria): 포르투갈에서 브라질 식민지까지 이어진 토지 분배 제도

세마리아(Sesmaria)는 포르투갈 왕국 소유의 방치된 토지를 개간할 수 있도록 점유권을 하사한 제도입니다. 처음에는 포르투갈 본토에서 시행되었고, 이후 식민지 브라질로 확대되어 1530년부터 1822년까지 약 300년간 유지되었습니다. 이 제도 자체는 이미 12세기부터 공용지·공동체 토지에 적용되어 온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세마리아라는 이름의 유래

‘세마리아’라는 명칭은 ‘나누다’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세마르(sesmar)’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공동체가 경작하는 토지는 거주 인구 수에 따라 구획된 뒤, 추첨을 통해 배분되었습니다. 그 목적은 각 지역의 경작을 보장하는 것이었으며, 구획된 토지는 토지 가치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하여 ‘세스모(sesmo)’라고 불렸습니다.

세마리아의 규모

세마리아 하나의 면적은 약 6,500제곱미터였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채택된 이 측정 기준은 나중에 브라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포르투갈에서의 역사

세마리아 제도는 아랍 세력을 몰아낸 재정복(레콩키스타) 이후 포르투갈 왕국이 공식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 과정은 11세기에 시작되어 15세기에야 완결되었습니다. 토지 분배는 1375년 페르난두 1세(Dom Fernando I)의 법령을 근거로 시행되었으며, 필리페(Filipe)·마누엘(Manuel)·아폰수(Afonso) 등 후대 국왕들의 치세에도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많은 세마리아는 템플 기사단(Knights Templar)의 후신으로 ‘그리스도 기사단(Order of Christ)’이라는 이름을 언 단체의 통제 아래 있었습니다. 이 기사단은 무어인 축출을 지원하고 해외 항해 사업에 힘을 보태면서 포르투갈 영토의 통합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브라질에서의 세마리아 제도

브라질에서 세마리아 제도는 영토 확보 수단으로 도입되었으며, 당시 브라질 영토는 이미 세습 카피타니아(세습 영주령)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카피타니아는 왕실에 별도의 비용 없이도 영유권을 보장해 주었지만, 해당 지역들은 외세의 침입에 시달리는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세마리아 분배는 마르팅 아폰수 지 소자(Martim Afonso de Sousa)가 주도했으며, 카피타니아를 다시 세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왕실에 필요한 식민지화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토지 분배의 목표는 기독교 정착민을 유치하는 것이었고, 이들은 하사장을 통해 보장된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토지를 받은 사람들을 ‘세스메이루(sesmeiro)’라 불렀습니다.

다만 세마리아를 받았다고 해서 완전한 행정 지배권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고, 수혜자는 여전히 왕실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카피타니아에 파견된 영주(capitão-donatário)는 영토의 20%를 직접 보유하고, 나머지 80%를 세마리아 방식으로 분배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왕실이 세마리아를 규제하며 직면한 주요 문제는 경작 의무와 영토 경계 설정이었고, 이는 무단 점유자들에게 종종 무시당했습니다. 세스메이루에게 토지를 임차한 무단 점유자들은 실제로 경작에 나섰고, 자신들의 토지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제도 개선을 시도했지만, 결국 1822년에야 세마리아 제도가 폐지되면서 무단 점유자들이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습 카피타니아(영주령)

세습 카피타니아는 브라질 최초의 영토 구획이었습니다. 1534년부터 1536년 사이에 주앙 3세(Dom João III) 국왕이 브라질을 14개의 토지 단위로 나누어 배분했습니다.

수여자는 하사장(양여장)과 특허장을 함께 받았습니다. 카피타니아의 소유권은 자녀에게 상속될 수 있었지만 매각은 불가능했습니다. 토지는 어디까지나 왕실의 소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개발·경영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수여자는 마을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제분소 같은 생산 설비를 건설하며, 사법 질서를 유지할 책임도 져야 했습니다.

카피타니아 소유주에게 부여된 권한은 상당히 컸습니다. 자유민·원주민·흑인에 대한 사형 선고권, 세금 면제권, 왕실에 납부되던 기부금의 수취권 등이 그 예입니다.

또한 영주는 기독교 남성에게 세마리아를 분배하고 식민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 책임도 맡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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