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티라덴테스의 날: 브라질 국가 영웅을 기리는 4월 21일

티라덴테스의 날(Dia de Tiradentes)은 1965년부터 법률 제4897호에 따라 매년 4월 21일 브라질에서 기념되고 있습니다.

이 날은 브라질의 국가 공휴일로, 브라질의 국가 영웅이자 순교자, 그리고 브라질 민족의 수호자로 추앙받는 티라덴테스를 추모하는 날입니다.

브라질 역사의 발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이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처형당한 날인 1792년 4월 21일, 즉 티라덴테스가 교수형에 처해 사지가 찢겨진 날을 기념일로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티라덴테스는 누구인가?

호아킴 조제 다 시우바 자비에르(Joaquim José da Silva Xavier)는 1746년 11월 12일 미나스제라이스주의 폼발(현재의 티라덴테스)에서 태어났습니다.

'티라덴테스'라는 별명은 포르투갈어로 '이발사'를 뜻하며, 당시 약업 종사자들이 치과 시술을 할 수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치료 목적으로 환자들의 이를 뽑아주곤 했기 때문에 이러한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티라덴테스는 18세기 식민지 시대 브라질에서 일어난 해방 혁명 운동 중 하나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참고로 당시에는 빌라리카 반란(Revolta de Vila Rica)이나 바이아 음모(Conjuração Baiana)와 같은 다른 반란 운동들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티라덴테스의 체포와 죽음

1788년, 티라덴테스는 포르투갈 왕실에 맞선 혁명 운동인 미나스 음모(Inconfidência Mineira)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다 1789년 5월 10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자신의 대의에 대한 지지를 모으던 중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3년간 감옥에 갇혔으며, 공모자 집단 중 유일하게 교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결국 1792년 4월 21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람파두자 광장(Praça da Lampadosa)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뒤 사지가 찢기는 잔혹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미나스 음모(Inconfidência Mineira)

미나스 음모는 '미나스 공모(Conjuração Mineira)'라고도 불리는 분리주의·해방 운동으로, 포르투갈로부터 미나스제라이스 카피타니아의 독립을 추구했습니다.

18세기 동안 포르투갈인들은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미나스제라이스 지역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오늘날 이 주의 이름 역시 바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그 결과 미나스제라이스는 행운을 찾아 정착한 탐험가들과 정복자들에게 매력적인 땅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금 채굴은 17세기와 18세기 포르투갈 왕실의 핵심 경제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왕실은 광산과 노동자, 노예를 착취하는 것은 물론, 퀸토(quinto), 데라마(derrama), 카피타상(capitação)과 같은 과도한 세금까지 식민지에 부과했습니다.

채굴된 금의 상당 부분은 왕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유럽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러한 가혹한 세금 정책으로 인해 엘리트층과 일반 대중은 현 상황에 점점 더 깊은 불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인콘피덴치(공모자) 집단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인콘피덴치는 미나스제라이스 엘리트층의 대표들로 구성된 집단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토지 소유주, 군인, 광산업자, 변호사, 지식인, 성직자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집단은 약 30명의 회원으로 이루어졌으며, 포르투갈계 브라질 시인 토마스 안토니우 곤자가(Tomás Antônio Gonzaga, 1744~1810)와 미나스제라이스 출신 시인 클라우디우 마누엘 다 코스타(Cláudio Manuel da Costa, 1728~1789)도 그중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카피타니아의 자치권 확보, 지역의 독립, 그리고 공화정 정부 체제의 도입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운동이 포르투갈 왕실에 밀고되면서 결국 좌절되었고, 그 결과 티라덴테스는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나머지 공모자들은 투옥되거나 추방되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