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르 탄핵이란?
콜로르 탄핵은 1992년 브라질의 페르난도 콜로르 지 멜루(Fernando Collor de Mello) 대통령이 직무에서 파면된 과정을 말합니다.
부패와 금융 사기에 연루된 혐의가 드러나면서 얼굴에 녹색과 노란색을 칠한 학생들이 주축이 된 '카스 핀타다스(Caras Pintadas)' 운동이 일어나 거리는 들썩였습니다.
결국 상원은 찬성 76표, 반대 3표로 그의 파면을 의결했습니다.
탄핵의 배경과 이유
선거운동 기간 콜로르는 젊은 나이를 무기로 삼아 부패 척결과 '마라자(marajás)' 숙청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마라자란 출근하지 않으면서도 급여를 챙겨 가던 특권층 공무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취임 후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콜로르 플랜(Plano Collor)'을 단행해 5만 크루제이루를 넘는 은행 예금을 강제 동결했습니다.
결국 물가 안정에는 실패했고, 기업들은 도산하고 실업률이 급증하며 국민의 실망은 깊어졌습니다.
PC 파리아스 비자금 스캔들
결정타는 콜로르의 친형제인 페드루 콜로르(1956~1994)가 대통령이 횡령 사건에 연루됐다는 증거를 공개적으로 폭로하면서 터졌습니다.
혐의의 골자는 콜로르의 선거자금을 비자금으로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유령회사를 설립하고 해외 계좌를 이용해 막대한 공적 자금이 빼돌려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PC 파리아스'로 알려진 파울루 세자르 파리아스(1945~1996)는 콜로르 진영의 재정책임자였습니다. 그는 정부 출범 후에도 대통령 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여러 협상에서 대통령의 '철벽 대리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스캔들은 브라질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한층 부채질했습니다.
'포라 콜로르' 운동

얼굴에 브라질 국기 색인 녹색과 노란색을 칠한 학생들, 이른바 '카스 핀타다스'가 거리로 나서면서 운동은 전 국민적 저항으로 번졌고, '포라 콜로르(Fora Collor, 콜로르 물러가라)'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92년 8월 11일, 상파울루 미술관(MASP) 앞에 약 1만 명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에 대통령은 전국 방송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고, 다음 주 일요일에 시민들이 브라질의 색을 입고 지지를 표명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은 일요일'로 기록된 그날, 국민들의 대답은 검은 옷 입기였습니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여실히 드러냈고 시위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브라질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민심이 등을 돌린 순간이었습니다.
이타마르 프랑코 대통령 취임
파면이 확정되자 부통령 이타마르 프랑코(1930~2011)가 대통령직을 승계해 1995년 1월 1일까지 임기를 마쳤습니다.
이타마르 프랑코는 탄핵 절차가 개시된 직후인 같은 해 10월 2일 이미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습니다.
콜로르 탄핵 연대기

- 1989년 12월 17일: 국가재건당(PRN)의 페르난도 콜로르 지 멜루가 결선 투표에서 노동자당(PT)의 루이스 이나시우 다 시우바(룰라)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 1990년 3월 15일: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 1992년 9월 29일: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콜로르는 대통령 직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 1992년 12월 29일: 상원이 탄핵 심판 표결에 나섰습니다. 회의 시작 몇 분 뒤 측 변호인이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표결은 강행됐고, 정치권리가 8년간 박탈된 채 콜로르는 공식적으로 파면되었습니다.
- 2002년: 탄핵 약 10년 뒤 알라고아스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습니다.
- 2006년: 알라고아스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계에 복귀했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
- 사업가이자 전 재정책임자 파울루 세자르 파리아스는 1996년 마세이오에서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살해당했습니다.
- 전직 대통령이자 상원의원이 된 콜로르 지 멜루는 2016년 8월 질마 루세프 전 대통령 탄핵안이 표결된 회의에 참석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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