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4년 추가법(Ato Adicional)은 1824년 브라질 헌법에 도입된 일련의 개정 조항으로, 브라질 제정기 정치 구조를 크게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역사적 배경
당시 브라질은 극심한 혼란기를 겪고 있었다. 도무 페드루 1세(Dom Pedro I)가 퇴위하면서 왕위 계승자가 겨우 다섯 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국가는 심각한 권력 공백에 빠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삼두 섭정(Trina Regency) 체제가 설치되었으며,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섭정 시대(Regência)'로 불린다.
삼두 섭정의 구성원은 프란시스쿠 지 리마 이 실바(Francisco de Lima e Silva) 준장과 상원의원 주제 주아킹 캄푸스(José Joaquim Campos), 니콜라우 지 캄푸스 베르게이루(Nicolau de Campos Vergueiro)였다.
그러나 정치 무대 위에는 여러 이념 세력이 난립하며 서로 영향력을 다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분리주의 반란이 터져 나왔다. 남부에서는 파라포스 전쟁(War of the Farrapos)이 격화되면서 상페드루 두 히우그란지와 산타카타리나 주가 연방에서 분리독립할 위기에 처했다. 북부에서는 카바나젬(Cabanagem) 반란이 민중의 요구를 앞세워 대지주와 상인층을 위협했다.
1834년 추가법의 주요 내용
추가법은 자유파와 보수파 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헌법 개정 형식으로 제정되었다. 종신 상원제와 재산 자격에 따른 선거권 제한 같은 1824년 헌법의 일부 제도는 유지되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진보적인 자유주의적 변화가 담겨 있었다.
추가법의 핵심 변화는 다음과 같다.
- 각 주(província)에 더 큰 자치권 부여
- 주 입법 의회 신설 및 의원 2년 임기 선출
- 주 정부의 세금 징수 및 공무원 임용·해임 권한 인정
- 삼두 섭정에서 단일 섭정(Una) 체제로 전환
- 섭정을 비밀 투표로 선출하고 임기를 4년으로 규정
- 국무회의(Conselho de Estado) 폐지
- 황제의 고유 권한이던 중재권(Poder Moderador) 중단
- 리우데자네이루를 중립 자치체(Município Neutro)로 분리하고, 리우데자네이루 주의 주도를 니테로이(Niterói)로 지정
이러한 개정은 지방 분권화를 핵심으로 삼아, 중앙 정부의 권력을 분산시키고 각 주가 스스로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840년 해석법과 자치권의 축소
1837년, 디에구 안토니우 페이조(Diogo Antônio Feijó)는 정치적 지지 기반을 잃고 단일 섭정직에서 사임했다. 그 뒤를 이어 아라우주 리마(Araújo Lima)가 섭정에 올랐다. 보수파에 속한 그는 각지의 주 단위 반란을 종식시키는 방안으로 중앙 집권 강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에 따라 의회는 추가법 해석법(Lei Interpretativa do Ato Adicional)을 제정했으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보수당과 자유당이라는 두 개의 정당 체제가 정착됨
- 1834년 추가법으로 확보된 주의 자치권 대폭 축소
그러나 남부에서 파라포스 전쟁 등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자유파는 도무 페드루 2세(Dom Pedro II)의 성년 조기 선포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법을 다시 수정해야 했으며, 이 과정은 역사적으로 '성년 쿠데타(Golpe da Maioridade)'로 알려져 있다. 결국 1840년 7월, 당시 14세였던 페드루 2세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브라질의 섭정 시대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