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카바나 요새 반란(포르투갈어: Revolta dos 18 do Forte de Copacabana, '코파카바나 요새의 18인 반란')은 192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어난 정치·군사적 봉기로, 테넨티스모(tenentismo) 운동의 첫 번째 반란으로 평가받습니다.
테넨티스타(Tenentista)라고 불린 젊은 장교들은 실증주의적 이념을 바탕으로, 권력이 전통적 농업 엘리트에게 집중된 과두정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와 사회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18인 반란'이라는 이름은 최후까지 저항을 이어간 인원 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군인 17명과 민간인 1명, 총 18명을 가리킵니다.
역사적 배경
반란은 1922년 7월 5일, 당시 브라질의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구 공화국(República Velha, 1889~1930)으로 불리는 시대로, 에피타시오 페소아(Epitácio Pessoa) 정부가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리우데자네이루 군사클럽(Clube Militar)의 폐쇄를 명령했고, 군사클럽 회장이자 전직 대통령(1910~1914년 재임)인 원수 헤르메스 다 폰세카(Hermes da Fonseca)의 체포를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군부의 분노를 극도로 자극했습니다.
반란의 지도자는 헤르메스 다 폰세카의 아들인 에우클리데스 헤르메스 다 폰세카(Euclides Hermes da Fonseca) 중령이었습니다. 그는 구 공화국의 붕괴와 과두정치 체제의 종식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브라질 정치는 커피 재배 농장주들의 손에 들어 있었으며, 미나스제라이스 주와 상파울루 주가 교대로 집권하는 소위 '커피와 우유 정책(política do café com leite)'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반란의 도화선
과두정치 독점에 대한 불만에 더해, 1921년 대통령 선거가 반란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군부의 지지를 받던 닐루 페사냐(Nilo Peçanha)와 과두 지배층의 지지를 받던 아르투르 베르나르데스(Artur Bernardes)가 대결했고, 결국 미나스제라이스 출신의 베르나르데스가 승리하면서 군부의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베르나르데스가 군 장교들을 모욕했다고 알려진 위조 서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군부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반란의 경과
반란이 발발했을 때 코파카바나 요새에는 301명의 전투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군의 포격이 시작되자 상황은 급격히 기울었고, 에우클리데스 헤르메스는 병력들에게 요새를 떠날 것을 허용했습니다. 이후 요새에는 29명만 남았고, 협상을 위해 요새를 나섰다가 체포된 에우클리데스 헤르메스를 제외하면 28명이 남았습니다.
승산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남은 28명은 요새의 깃발을 28조각으로 찢어 한 사람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자신들의 이상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의의 표현이었습니다.
'18인'의 최후
그들은 요새를 빠져나와 아틀란티카 대로(Avenida Atlântica)를 따라 당시 대통령 관저였던 카테테 궁(Palácio do Catete) 방면으로 진격했습니다. 행진 도중 교전이 벌어지면서 10명이 흩어졌고, 마침내 남은 18명은 약 3,000명에 달하는 정부군과 맞서기로 결심합니다.
압도적인 열세 속에 대부분의 반란군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안토니우 지 시케이라 캄푸스(Antônio de Siqueira Campos, 1898~1930)와 에두아르두 고메스(Eduardo Gomes, 1896~1981)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중상을 입었지만 목숨은 건졌으며, 이후 브라질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활약하게 됩니다.
역사적 의의
비록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코파카바나 요새 반란은 군부 내 개혁 세력의 각성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테넨티스모 운동은 이후 프레스테스 종대 등으로 이어지며 확산되었고, 결국 1930년 혁명으로 구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제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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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
- 브라질에서 일어난 다른 주요 테넨티스타 운동으로는 프레스테스 종대(Coluna Prestes, 1924~1927)와 1924년 혁명이 있습니다.
- 생존자 에두아르두 고메스는 이후 원수로 승진했으며, 1945년과 195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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