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주들이 연방에서 탈퇴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노예제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1850년대: 새 영토를 둘러싼 남북 갈등
1850년대 미국은 멕시코 전쟁 이후 새로 편입된 영토에 노예제를 확장할 것인가를 두고 북부와 남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북부인들은 대체로 노예제 확장에 반대한 반면, 남부인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1850년 타협안과 캔자스-네브래스카법(Kansas-Nebraska Act)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이어졌고, 이는 오히려 두 지역 사이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캔자스-네브래스카법은 주민들이 직접 노예제 시행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주민 자치' 원칙을 도입하면서, 양측이 새 영토를 장악하기 위해 벌이는 유혈 충돌('피 흐르는 캔자스')까지 촉발했습니다.
1860년 링컨 당선과 남부 7개 주의 탈퇴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영토 내 노예제 확장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남부는 링컨 행정부가 주권을 침해해 노예제를 폐지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결과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등 7개 주가 잇달아 연방에서 탈퇴했습니다.
이들 주는 새 연방 정부가 노예제를 유지할 주(州)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분리 독립의 정당성을 내세웠습니다. 이후 버지니아,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 4개 주가 추가로 탈퇴하면서, 최종적으로 11개 주가 연방을 떠나 남부동맹(Confederacy)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남북전쟁으로 이어진 분열
남부 주들의 탈퇴는 결국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간 이어지는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으로 번졌습니다.
전쟁은 북부 연방(Union)의 승리로 끝났으며, 그 결과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분열되었던 국가는 다시 통합되었습니다. 1863년 발표된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과 1865년 비준된 수정 헌법 제13조는 이 역사적 전환을 상징하는 이정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