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의 서막은 1860년 12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연방 탈퇴 선언으로 열렸습니다. 이후 1861년 초까지 여러 남부 주들이 잇달아 연방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첫 번째 탈퇴 물결: 1860년 말~1861년 초
사우스캐롤라이나(1860년 12월 20일)에 이어 다음과 같은 순서로 6개 주가 연방을 탈퇴했습니다.
- 미시시피주 — 1861년 1월 9일
- 플로리다주 — 1861년 1월 10일
- 앨라배마주 — 1861년 1월 11일
- 조지아주 — 1861년 1월 19일
- 루이지애나주 — 1861년 1월 26일
- 텍사스주 — 1861년 2월 1일
두 번째 탈퇴 물결: 섬터 요새 전투 이후
그런데 1861년 4월부터 또 다른 4개 주가 뒤늦게 연방에서 분리되었습니다. 버지니아주가 4월 17일에 탈퇴했고, 아칸소주(5월 6일), 테네시주(5월 7일), 노스캐롤라이나주(5월 20일)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이들 주가 처음에는 탈퇴하지 않았다가 시점을 늦춘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1861년 4월 12일에 시작된 섬터 요새 전투였습니다. 남부동맹군이 연방군 기지인 섬터 요새를 공격하자, 링컨 대통령은 반란 진압을 위해 각 주에 총 75,000명의 의용병 징집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버지니아,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 상부 남부(Upper South)의 주들은 동료 남부 주들과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연방에 잔류하는 조건이 '남부 형제들을 향한 무력 행사'라면 그 길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네 주는 링컨의 징병 요구를 계기로 연방을 떠나 남부동맹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1861년 4월~5월의 두 번째 탈퇴 물결은 노예제 문제만이 아니라, '연방이 무력으로 분리된 주들을 되돌리려 한다'는 상황 자체가 만들어낸 결과였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