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헌법에 여성의 동등한 법적 권리를 명문화하려는 평등권 수정안(Equal Rights Amendment, ERA)은 1923년 처음 발의된 이후 지금까지도 완전한 승인을 받지 못한 채 긴 여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RA의 핵심 연혁을 시대별로 살펴보겠습니다.
1923년: 평등권 수정안의 탄생
전국여성당(National Woman's Party, NWP)이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평등권 수정안(ERA)의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이는 여성 참정권 획득 직후, 법 앞의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려는 움직임의 시작이었습니다.
1940년대~1960년대: 꾸준한 추진과 첫 번째 저항
여성 참정권 운동가 앨리스 폴(Alice Paul)과 전국여성당은 수십 년에 걸쳐 ERA의 통과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파들은 ERA가 여성에게 기존에 제공되던 보호 조치를 약화시키고 전통적인 성 역할을 훼손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1972년: 의회의 승인과 비준 절차 시작
드디어 미국 의회가 헌법 제5조에 따라 ERA를 주 비준 절차에 회부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수정안이 헌법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7년 이내에 38개 주의 비준이 필요했습니다.
1975년~1982년: 뜨거운 지지와 보수적 반발
ERA는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35개 주의 비준을 확보하는 등 상당한 진전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보수적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필리스 슐래플리(Phyllis Schlafly)가 주도한 반(反)ERA 캠페인은 ERA가 가족 가치를 침식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비준 운동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1982년: 기한 만료와 무산
법적 소송으로 인해 기한이 7년 연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에서 조직적인 반대 운동이 벌어지면서 ERA는 비준에 필요한 주 수에 3개 주가 모자라는 상태로 비준 기한이 만료되었습니다. 결국 이 수정안은 헌법에 채택되지 못하고 무산되었습니다.
현재: 부활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그럼에도 ERA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다양한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은 주 의회에 과거의 비안을 유효하게 하거나 비준 기한을 삭제할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으며, 일부는 수정안의 새로운 버전을 제안하거나 사법적 해결 방안, 의회 결의안 등 다른 경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성공적인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평등권 수정안의 100년 역사는 법적 평등을 향한 여성 운동의 끈질긴 노력과,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