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의 날이란?
피코의 날(1822년 1월 9일)은 브라질 섭정 도메 페드루(Dom Pedro) 왕자가 포르투갈 의회의 명령에 반해 브라질에 남기로 결심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도메 페드루가 유명한 한마디를 남겼기 때문에 '피코(Fico, 나는 남는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 결정은 1822년 9월 7일에 이루어진 브라질 독립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도메 페드루는 왜 브라질에 남기로 했을까?
섭정 도메 페드루가 브라질에 남기를 원하게 된 배경에는, 포르투갈이 브라질이 '연합왕국'으로 승격되면서 얻은 권리를 다시 거둬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브라질은 다시 식민지 지위로 전락하고,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 권리마저 잃게 됩니다.
이에 따라 브라질의 농업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 사이에서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된 '브라질 왕국'을 세워야 한다는 구상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앙 6세(Dom João VI)는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 연합왕국의 이 영토가 스페인 식민지들과 같은 운명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예감한 듯했습니다.
그래서 포르투의 자유주의 혁명으로 인해 귀국하기 전, 아들이자 후계자를 브라질에 남겨두었습니다.
한편 도메 페드루 본인도 조제 보니파시우(José Bonifácio) 같은 인물들의 영향과 아내 레오폴디나(Dona Leopoldina)의 지지 속에 포르투갈 궁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1821년 12월, 도메 페드루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 포르투갈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소식은 브라질 사람들, 특히 브라질 농업 엘리트에게 폭탄선언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1808년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에 도착한 이후 얻은 통상의 자유를 지키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농촌 귀족들은 도메 페드루에게 브라질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미나스제라이스, 상파울루에서는 페드루가 포르투갈로 돌아가지 말아 달라는 서명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8천 개가 넘는 서명이 상원 의장 조제 클레멘테 페레이라(José Clemente Pereira)에 의해 도메 페드루에게 전달되었고, 그는 브라질에 남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1822년 1월 9일, 도메 페드루는 즉시 브라질을 떠나 포르투갈로 돌아오라는 포르투갈 의회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파수 헤알(Paço Real, 독립 후 파수 임페리알로 개칭)의 발코니에서 도메 페드루는 자신을 지켜보던 군중에게 다음과 같이 결정을 알렸습니다.
"만약 모두를 위한 선과 국가의 일반적 행복을 위해서라면, 국민에게 내가 남는다고 전하라."
이 일화는 역사에 '피코의 날(Dia do Fico)'로 기록되었습니다.
8개월 후, 농업 엘리트와 자유 인구의 지지를 받은 도메 페드루는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피코의 날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조르즈 아빌레즈(Jorge Avilez) 중장이 이끄는 군대까지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섭정 도메 페드루는 철군을 명령했고, 해당 병사와 지휘관들은 브라질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만약 모두를 위한 선과 국가의 일반적 행복을 위해서라면, 국민에게 내가 남는다고 전하라"는 문구의 축약형은 오늘날 브라질에서 널리 인용되는 명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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