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인들의 기대: '면화 왕(King Cotton)' 외교
1860년 남부가 연방에서 탈퇴하려 할 당시, 남부 지도자들은 영국이 남부 연합(Confederate)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 근거는 바로 면화 왕(King Cotton) 이론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섬유 산업은 세계 최대 규모였고, 필요한 원면의 약 80%를 미국 남부에서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남부 지도자들은 영국의 경제가 면화 공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면 북부의 봉쇄로 인한 면화 부족 사태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부 편에 개입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남부는 자유무역 정책을 표방했던 반면, 북부는 보호관세를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 역시 무역 관점에서 남부와의 관계가 유리하다고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일부 영국 상류층과 방직 업자들 실제로 남부 연합에 동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현실은 달랐다: 영국의 중립 선택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국은 남부 연합의 대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국 정부 내부적으로나 상당수 영국 시민들이 남부에 일정한 동정심을 보였지만, 영국 정부는 최종적으로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국이 개입을 거부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첫째, 영국은 인도와 이집트 등 다른 지역에서 면화 공급선을 확보할 수 있어 남부 면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둘째, 북부로부터 수입하는 밀과 곡물이 영국 식량 공급에 중요했기 때문에 북부와의 관계를 완전히 훼손할 수 없었습니다. 셋째, 노예제에 반대하는 영국 여론이 강력했으며, 특히 1863년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남부를 지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남부의 '면화 왕'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고, 영국은 공식적인 중립을 유지한 채 미국 남북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