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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나젬(Cabanagem): 브라질 그랑파라를 뒤흔든 대규모 민중 반란

카바나젬(Cabanagem)은 1835년부터 1840년까지 브라질 그랑파라(Grão-Pará) 주에서 일어난 극도로 격렬한 민중 반란이다. 이 반란은 해당 지역의 독립을 목표로 삼았다.

역사적 배경

1835년부터 1840년 사이, 브라질 제국은 섭정 시대를 겪고 있었다.

페드루 1세(Dom Pedro I)는 당시 5세에 불과했던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퇴위했다. 이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 섭정 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여러 주는 중앙집권적 권력에 불만을 품고 더 큰 자치권을 요구했다. 심지어 브라질 제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원하는 곳도 있었다.

이 시기 파루필랴(Farroupilha), 발라이아다(Balaiada), 사비나다(Sabinada) 등의 반란이 브라질 전역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그랑파라 주

카바나젬(Cabanagem): 브라질 그랑파라를 뒤흔든 대규모 민중 반란

붉은색으로 표시된 그랑파라 주의 지도

그랑파라 주는 오늘날 아마조나스(Amazonas), 파라(Pará), 아마파(Amapá), 호라이마(Roraima), 호동니아(Rondônia) 주에 해당한다.

그랑파라는 리우데자네이루보다 리스본과 훨씬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독립을 받아들이기를 마지못한 마지막 지역 중 하나였으며, 1823년에야 브라질 제국에 편입되었다.

카바나젬 반란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아마존 강, 마데이라 강, 토칸친스 강과 그 지류를 따라 확산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운동의 이름은 본래 멸칭으로, "오두막" 또는 "말뚝집" 형태로 지어진 이 지역의 전형적인 가옥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요 원인

반란의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 그랑파라 엘리트들에 의해 촉발된 정치적·영토 분쟁
  • 주 엘리트들이 주의 정치·행정 결정권을 장악하고자 한 야망
  • 섭정 정부가 그랑파라 주민들에게 보여준 무관심과 방임
  • 카바노스(cabanos)들이 더 나은 생활 조건과 노동 조건을 요구한 것

특히 주목할 점은, 앞서 언급한 엘리트들이 민중의 불만을 이용해 섭정 정부에 맞서 대중을 선동했다는 사실이다.

반란의 전개 과정

1822년 브라질 독립 이후 그랑파라의 엘리트들은 주 내 포르투갈 상인들의 존재에 깊은 반감을 품어 왔다.

페드루 1세 치세 동안 토지 소유주와 상인들은 중앙 정부로부터 받은 대우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1833년부터는 총독 베르나르두 로부 데 소자(Bernardo Lobo de Sousa)의 가혹한 탄압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라면 누구든 임의로 추방하고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결국 1835년 8월, 카바노스들은 농장주 펠리스 클레멘테 말셰르(Félix Clemente Malcher)와 프란시스쿠 페드루 비나그레(Francisco Pedro Vinagre)의 지휘 아래 반란을 일으켰고, 총독 베르나르두 로부 데 소자를 처형하는 것으로 반란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후 반군은 말셰르를 주지사로 추대했다. 이 과정에서 반군은 정부군의 무기를 탈취하며 세력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클레멘테 말셰르는 배신자로 돌변해 반군을 진압하려 들었고,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에두아르두 안젤림(Eduardo Angelim)을 체포했다. 피비린내 나는 충돌 끝에 말셰르는 카바노스들에게 살해되었고, 그의 뒤를 프란시스쿠 페드루 비나그레가 이었다.

1835년 7월, 새로 장악한 주의 지도자는 혁명가들에 대한 전면 사면과 빈곤층의 생활 개선을 조건으로 항복을 받아들였으나, 곧 배신당해 체포되고 만다.

카바나젬(Cabanagem): 브라질 그랑파라를 뒤흔든 대규모 민중 반란

세 광장(Praça da Sé)에서 벌어진 전투는 카바나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 중 하나였다

이에 분노한 그의 형제 안토니우 비나그레(Antônio Vinagre)는 반란군을 재편성해 벨렝 궁전을 공격했고, 1835년 8월 14일 이를 재차 함락시켰다.

이때 에두아르두 안젤림이 독립 공화정부의 대통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운동 지도부 간의 내분은 반란의 힘을 약화시켰고, 정부군의 반격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1836년, 섭정 페이조(Feijó)의 명을 받아 파견된 프란시스쿠 조제 데 소자 소아레스 지 안드레아(Brigadier Francisco José de Sousa Soares de Andréa) 준장이 그랑파라 섭정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카바노스에 대한 총력전을 승인했다. 그는 벨렝 시가지와 반군 거점에 대한 포격을 명령했다.

이렇게 외국 용병과 제국군의 지원을 등에 업은 정부군에 의해 반란은 진압되었다. 에두아르두 안젤림은 체포되어 리우데자네이루로 압송되었다.

마침내 1840년경, 대부분의 반군은 흩어지거나 체포·살해되었는데, 이는 1836년 이후에도 끊이지 않은 박해 때문이었다.

1840년 페드루 2세(Dom Pedro II)가 즉위하면서 수감자들은 사면을 받았다.

결과와 영향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부 혁명가들은 밀림 속으로 도피하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패배 후에도 카바나젬의 이상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카바나젬은 주 인구의 약 30~40%에 달하는 3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대참사로 남았다. 이 반란은 강변 주민들, 킬롱볼라(quilombolas), 원주민들, 그리고 지역 엘리트들까지 몰아낸 비극이었다.

동시에 노예 무역에는 타격을 입혔고, 그 결과 지역에서는 킬롱보(quilombos, 도망 노예 공동체)가 크게 늘어났다.

알아두면 좋은 이야기

  • 여성들은 정보와 식량을 반란 부대에 전달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카바나젬에 크게 기여했다.
  • 카바나젬은 다양한 사회 계층이 하나로 뭉친 몇 안 되는 섭정 시대 반란 중 하나였다.
  • 벨렝에는 반란 지도자들의 유해를 안치한 카바나젬 기념관(Memorial da Cabanagem)이 있다.
  • 2016년에는 발데시르 마누엘 아폰수 팔라레스가 집필하고 루이스 파르달과 자신투 카바게가 작곡한 카바나젬 테마의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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