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롬보스(Quilombos)는 플랜테이션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형성한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브라질에서 강제 노동을 피해 도망친 흑인 노예들에게 이곳은 저항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어원과 정의
'킬롬보(quilombo)'라는 단어는 아프리카 반투어(Bantu)에서 유래한 것으로, '숲의 전사'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식민 행정 차원에서 킬롬보가 처음으로 공식 정의된 것은 1740년, 포르투갈 해외평의회(Portuguese Overseas Council)에 의해서였습니다. 이 기관은 킬롬보를 '도망 노예 다섯 명 이상이 함께 거주하는 장소'로 규정했으며, 실제로 가옥이나 정착지가 갖춰져 있지 않더라도 이 정의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킬롬보의 생활상
킬롬보의 운영 방식은 그곳에 정착한 도망 노예들의 전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농업, 채집, 목축, 광업, 상업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이 펼쳐졌습니다.
흑인들은 이곳에서 잃었던 아프리카의 전통을 되살리려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다시 자유인이 되어 자신들의 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춤과 노래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노예 신세에 놓여 있는 동포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플랜테이션에서의 탈출을 조직적으로 돕거나, 자신들이 생산물을 판매해 벌어들인 돈을 모아 노예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사는 일도 흔한 일이었습니다.
킬롬보의 존재가 워낙 광범위했던 탓에 브라질에는 '카피탕 두 마투(capitães do mato)', 즉 '숲의 대장'이라 불리는 특수 직업군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지형에 밝은 숲의 전문가들로, 고용되어 도망친 노예들을 다시 붙잡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저항의 과정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킬롬보가 군사력으로 파괴되더라도 곧 다른 곳에서 새로운 킬롬보가 다시 나타났으며, 이는 브라질 노예 사회만의 독특한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팔마레스 킬롬보(Quilombo dos Palmares)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이미 17세기 초부터 흑인들이 팔마레스로 도망쳐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도망 노예를 추적하기 위한 최초의 원정은 1612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640년경 팔마레스에는 아홉 개의 마을이 존재했습니다. 안달라키투셰(Andalaquituche), 마카코(Macaco), 수부피라(Subupira), 아콸트네(Aqualtene), 담브라방가(Dambrabanga), 줌비(Zumbi), 타보카스(Tabocas), 아로티레네(Arotirene), 아마로(Amaro)가 그것입니다.
팔마레스 킬롬보에 대한 박해는 네덜란드인들이 브라질에서 축출된 이후 한층 심해졌습니다. 1670년부터 포르투갈은 마을들을 체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694년 킬롬보는 파괴되었으며 마지막 왕인 줌비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줌비 두스 팔마레스(Zumbi dos Palmares)
줌비 두스 팔마레스는 1655년 브라질 알라고아스 주에서 태어난 흑인 지도자입니다. 브라질 최대의 킬롬보였던 팔마레스의 마지막 왕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오늘날 저항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줌비의 본명은 프란시스코(Francisco)였습니다. 그는 자유민으로 태어났으나, 15세에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뒤 팔마레스 킬롬보에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1695년 11월 20일에 사망했습니다. 오늘날 이 날짜는 '흑인 의식의 날(Dia da Consciência Negra)'로 기념되며, 브라질 일부 주에서는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브라질의 킬롬보스
2015년 기준, 토지 소유권이 인증된 킬롬보 지역을 소유자별로 표시한 브라질 지도
팔마레스 킬롬보가 가장 유명하여 브라질 역사에 큰 획을 남겼지만, 사실 킬롬보는 브라질 거의 모든 주에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중 상당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끝까지 버텼으며, 그 주민들은 오늘날 '킬롬보 잔존 공동체(remanescentes de quilombos)'라 불립니다. 이들은 생존에 성공한 집단의 자손들입니다.
잔존 킬롬보 공동체

파라티(RJ)의 캄피뉴 킬롬보에서 전통 춤사위 '존고'를 연습하는 소녀들
오늘날 브라질에는 약 3천 개의 킬롬볼라(quilombola) 공동체가 있다고 추산됩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상들의 전통인 존고(jongo), 룬둠(lundum), 데스페이테이라(desfeiteira) 같은 음악과 춤, 수공예, 그리고 요리와 재배 기술을 지금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한편 그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축구를 하고, 도미노를 두며, 요즘 유행하는 음악도 즐깁니다. 비(非)킬롬볼라 이웃들과도 교류하며 성인 축일(feasts of saints)을 함께 지내며 지역 공동체와 어우러져 삶아갑니다.
킬롬볼라들의 토지 소유권 주장은 1988년 헌법에 반영되었습니다. 헌법 제68조는 잔존 킬롬보 공동체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는 완료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실제로 소유권 등기를 취득한 공동체는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