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은 새로운 영토로의 노예제 확장을 허용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에 반대한 노예제 폐지 운동가들에 의해 1854년 창당되었습니다. 공화당은 노예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했던 북부에서 빠르게 지지 기반을 넓혀갔지만, 노예제가 경제의 핵심 축이었던 남부에서는 강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남부인들의 공화당에 대한 반응
남부인들은 공화당을 자신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전반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노예제를 폐지하고 남부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많은 남부인들은 노예제를 정당하고 도덕적으로도 용납될 수 있는 제도라고 믿고 있었기에, 공화당의 노예제 비판에 대해 깊은 반감을 느꼈습니다.
공화당의 반노예제 입장은 남북 간 긴장을 한층 고조시켰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1860년 에이브러햄 링컨의 대통령 당선이었습니다. 남부인들은 이 선거 결과를 통해 연방 정부가 더 이상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11개 남부 주가 연방에서 탈퇴하여 아메리카 연합국(남부연합)을 결성하게 됩니다.
북부인들의 공화당에 대한 반응
반면 북부에서는 노예제 폐지에 대한 지지 여론이 강했기 때문에 공화당은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북부인들은 공화당을 자신들의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자 노예제라는 악습을 종식시킬 희망으로 여겼습니다. 1860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거둔 승리는 반노올제 운동의 중대한 승리였으며, 이후 남북전쟁 중 노예 해방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공화당은 북부 정치의 지배 세력으로서 위상을 유지했습니다. 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평등과 시민권 확대를 지향하는 정책을 계속해서 추진했습니다. 다만 당 내부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완전한 평등을 보장하는 데 반대하는 일부 구성원들이 존재하며 내부 갈등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오랜 기간 북부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으로 군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