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1930년대 대평원 농부들은 정말 땅을 버리고 서쪽으로 떠났을까?

1930년대 미국 대평원(Great Plains) 하면 '더스트 볼(Dust Bowl)'이라 불리는 극심한 가뭄과 흙먼지 폭풍, 그리고 이를 피해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농민들의 행렬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대평원 농부 대다수는 사실 자신의 땅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대다수 농부는 땅을 지켰습니다

'모두가 떠났다'는 통념과 달리, 1930년대 대평원에서 실제로 이주한 사람은 전체 농가 중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탈이 두드러진 곳은 가뭄과 황사의 피해가 집중된 오클라호마 팬핸들, 캔자스 서부, 텍사스·콜로라도·뉴멕시코 일부 지역 등 이른바 '더스트 볼' 핵심 지역이었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안정적이었던 동부 대평원 지역의 농가들은 대부분 제자리에 남아 농사를 이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들

물론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인 농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연이은 가뭄으로 밀과 옥수수 수확이 급감했고, 흙먼지 폭풍은 들판의 비옥한 표토를 몰아가 경작지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대공황으로 곡물 가격이 폭락하며 수입이 끊겼고, 담보대출을 갚지 못한 농가는 은행에 토지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생계를 위해 가족 전체가 짐을 꾸려 서쪽, 특히 캘리포니아로 향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와 도러시아 랭의 사진 『이주 어머니』를 통해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변화도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대평원 전체의 인구 흐름 역시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피해가 심각한 카운티들은 인구가 급감한 반면, 관개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지역은 인구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즉, 1930년대 대평원은 '전원이 떠나버린 황무지'가 아니라,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대다수가 뿌리를 지킨 지역이었습니다.

정리하면

결론적으로 '1930년대 대평원의 많은 농부들이 땅을 떠나 서쪽으로 향했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떠난 이들은 주로 더스트 볼 피해 지역의 소작농과 소규모 자영농이었으며, 대다수 농부는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땅에 남아 가뭄과 황사, 경제 위기를 견뎌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