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카발러(José Cavaller) 신부는 1891년 3월 1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사라고사(Zaragoza)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15년 6월 18일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코미야스 대학교에서의 교수 활동
1928년 11월, 카발러 신부는 왕립 코미야스 교황청립대학교(Universidad Pontificia Comillas)의 교수진으로 임용되어 교회법, 헌법, 국제법 과목 강의를 담당했습니다.
언론 활동과 학문적 성취
그는 저명한 예수회 학술지 ‘라손 이 페(Razón y Fe)’의 편집자이자 집필자로 활동하며 정치·사회 이슈에 관한 다양한 글을 발표했고, 교회법·민법 연구소(Instituto de Derecho Canónico y Civil) 설립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카발러 신부는 자연권, 사회 질서, 사유재산권에 관한 연구로 폭넓은 인정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활동사무국(Secretariado de Acción Social)’의 창설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활동사무국의 창설과 내전
사회활동사무국은 1931년 6월, 스페인 제2공화국 선포 이후 급변하는 정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탄생한 기구입니다. 그러나 이 기구가 수행해 온 사회사업은 불행히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내전이 종결된 후, 예수회가 사회활동사무국을 인수하며 새로운 기관인 ‘사회정의학교’를 설립해 그 사업적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말년의 헌신과 유산
카발러 신부는 또한 스페인 사회과학연구소(Instituto de Ciencias Sociales) 설립에 참여해 1956년까지 협력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그 후의 세월 동안 그는 영성 피정과 강연을 통해 젊은 세대의 양성과 교육에 헌신했으며, 자신의 신학·교회법 연구 성과들도 꾸준히 출판했습니다.
호세 카발러 신부는 1969년 12월 5일 바르셀로나의 산트쿠갓델바예스(Sant Cugat del Vallès)에서 선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