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예, 바스코 데 누네스 데 발보아(Vasco Núñez de Balboa)는 실제로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는 신대륙 탐사와 정복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 학살을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마저 처형한 인물입니다.
원주민에 대한 학살과 폭력
발보아는 16세기 초 스페인의 대표적인 콩키스타도르(정복자)로서, 오늘날 파나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복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의 원정은 종종 무력 충돌로 이어졌고, 저항하는 원주민들에게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1513년을 들 수 있습니다. 발보아는 파나마에서 자신의 침략에 맞서 저항하던 대규모 원주민 집단에 대한 학살을 직접 명령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정복자들은 흔히 전투력이 뛰어난 개를 풀어 포로들을 공격하게 하는 등 잔혹한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발보아 역시 이러한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자기 부하까지 처형한 엄격함
발보아의 폭력성은 적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거나 반란을 일으킨 자신의 부하들마저 처형했습니다. 여러 명의 병사가 반역죄 등을 이유로 그의 명령에 따라 처형당했으며, 이는 그가 얼마나 강경하고 무자비한 통치 방식을 취했는지 보여줍니다.
발보아라는 인물, 두 가지 얼굴
흥미롭게도 발보아는 역사적으로 1513년 유럽인 최초로 태평양을 육지에서 목격한 탐험가로 유명합니다. 다리엔 지협을 건너 태평양에 도달한 그의 업적은 탐사사에서 중요한 순간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 뒤에는 원주민 학살과 부하 처형이라는 어두운 기록이 함께 있습니다. 발보아는 결국 권력 다툼 끝에 동료였던 페드라리아스 다빌라(Pedrarias Dávila)에 의해 1519년 반역 혐의로 처형당했다는 점도, 그의 삶이 폭력과 권력 투쟁으로 얼룩져 있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요컨대 발보아는 위대한 탐험이라는 찬사와 식민지 정복의 잔혹함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짊어진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