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국민위병(National Guard): 1831년 창설부터 해체까지의 역사

브라질 국민위병(Guarda Nacional)은 1831년 8월, 섭정 시기(Regência)에 창설되었습니다. 그 목적은 육군의 권력을 견제할 무장 조직을 확보하고, 각 주(州)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데 있었습니다.

탄생 배경

브라질 국민위병(National Guard): 1831년 창설부터 해체까지의 역사

국민위병 장교 군복. 수채화 석판화. 리우데자네이루, 헤이턴 앤 렌스부르크 제국 석판소, 연대 미상.

도무 페드루 1세(Dom Pedro I)가 퇴위한 후, 보수파·자유파·절대왕정파 등 다양한 정치 세력이 삼두 섭정 정부 안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시키려 경쟁했습니다.

육군 역시 새 정부에 대한 요구를 내세웠습니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재정복하려 들지 않을까 우려한 일부 장교들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했습니다.

  • 포르투갈인의 브라질 이주 중단
  • 공직에서 포르투갈인 축출
  • 새 헌법의 제정
  • 새로운 정부의 수립

요구는 곧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제26보병대대와 시 경찰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당시 사법부 장관 디오구 페이조(Diogo Feijó)는 미나스제라이스와 상파울루의 대대들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동시에 동맹 세력에게 무기를 배급하여 약 3천 명 규모의 '성스러운 대대(Batalhão Sagrado)'를 조직했는데, 이 부대는 당시 대위였던 루이스 알베스 지 리마 이 실바(Luís Alves de Lima e Silva, 훗날의 카시아스 공작)가 지휘했습니다.

국민위병의 창설

브라질 국민위병(National Guard): 1831년 창설부터 해체까지의 역사

국민위병 기병대 대원. 수채화 석판화. 리우데자네이루, 헤이턴 앤 렌스부르크 제국 석판소, 연대 미상.

이러한 사태를 거치며, 정부가 고유한 정치적 입장을 지닌 육군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엘리트층으로 구성된 별도의 무장 세력, 즉 국민위병을 만들기로 합니다. 대원은 모두 선거권을 가진 시민이었으며, 그 대가로 육군 복무를 면제받았습니다.

다만 급여는 지급되지 않았고 군복 역시 스스로 마련해야 했습니다. 정부는 무기와 교육 훈련만을 책임졌습니다. 국민위병의 지휘 체계는 치안판사를 시작으로 법관, 주 총독(provincial president)을 거쳐 최종적으로 사법부 장관에게 예속되었습니다.

문민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 계급은 대령(colonel)이었는데, 이 칭호는 각 지역의 대토지 소유주에게만 돌아갔습니다. 바로 이런 구조 속에서 브라질 정치를 오랫동안 규정하게 될 '코로넬리즘(coronelismo)' 현상이 탄생합니다.

육군 입장에서 국민위병의 창설은 재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병력이 3분의 1가량 감축되었고, 그 결과 군의 위상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와 페르남부쿠에서 군 반란이 발생했지만, 장교들은 대중의 지원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노예들의 봉기를 촉발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병영 안에 고립된 채, 그들의 요구는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국민위병의 종말

주로 브라질 육군의 주도로 공화국이 선포된 이후, 국민위병은 그 중요성을 잃어갔습니다. 애초에 육군은 이 무장 조직의 창설 때부터 반대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위병은 여러 육군 대대에 흡수되었고, 마침내 공화정 시기인 1922년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Artur Bernardes) 대통령에 의해 공식 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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