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 수용소(internment camp)란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을 강제로 구금하던 시설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군인을 가둬두는 포로수용소와 달리, 수용소에는 적성 국가 출신 이민자, 특정 인종이나 민족 집단에 속한 일반 시민들이 대거 수감되었습니다.
추축국이 만든 수용소들
전쟁 기간 수용소의 상당수는 나치 독일, 일본 제국 등 추축국(Axis powers)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롬인(집시), 정치범 등을 대상으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많은 강제수용소를 운영했으며, 일본 제국 역시 점령지 주민과 연합국 포로를 수용하는 시설을 다수 운영했습니다.
연합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연합국 진영 역시 수용소 운영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같은 국가들은 자국 시민이나 특정 인종·국적 집단을 구금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이다.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 정부는 서해안 지역의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을 강제 이주시켜 내륙의 수용소에 가두었습니다. 이들 중 다수는 미국 시민권자였음에도 재산을 잃고 수년간 수용 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 미국: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 수용
- 캐나다: 일본계 캐나다인 및 적성국 출신 이민자 수용
- 영국: 적성국 외국인(enemy aliens)으로 분류된 이민자 구금
- 호주: 독일, 이탈리아, 일본 출신 거주민 및 이민자 수용
그렇다면 생존자는 몇 명?
생존자 수는 수용소의 성격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경우 학살과 질병, 기아로 사망률이 극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5년 해방 당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은 약 25만 명 안팎으로 추산됩니다.
반면 미국의 일본계 미국인 수용소는 학살 목적이 아니라 감시와 격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수용된 12만 명 가운데 대부분이 종전 후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수용소 문제는 특정 진영만의 일이 아니라, 전시라는 이름 아래 민간인의 자유를 박탈했던 여러 나라의 공통된 어두운 역사라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깊은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